[증권가사람들] (2) 번민하는 증권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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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무씨.53세. 대형 D증권사에서 충청 호남지역의 7개 지점을 총괄했던 상무급 임원. 일선 지점장에서 본부장으로,본부장에서 이사,이사에서 상무로 진급의 사다리를 오르는데 3년을 넘기지 않았던 특출했던 증권맨. 폐점위기의 이회사 이리지점을 맡아 7백개에 달하는 전국의 증권사지점중 랭킹 10위권내로 끌어올린 기적을 불과 2년동안 만들어낸 사람이다. 제조업체 사원으로 직업인생을 시작해 한때 전자대리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증권쪽에서 인생의 승부수를 던져 성공의 문턱을 절반은 넘어섰던 그였다. 지금 이 윤상무는 강원도 모콘도에서 기약없는 도피생활을 몇달째 계속하고있다. 최상급의 증권브로크였던 그가 침몰하는데는 그러나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가가 급등락을 거듭했던 지난해 9월 그동안의 작은 손실이 누적된 끝에 결국에는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고금액은 모두 34억원. 모기업으로부터 유치한 22억원을 임의로 매매한 끝에 14억원의 매매손실을 냈고 개인고객으로부터 수기통장을 써주고 맡았던 20억원은 장기간의 증권투자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명목은 고객자산 횡령이지만 윤상무 본인의 수중에 떨어진 돈은 한푼도 없는 것 같다는 것은 이사건을 조사하고있는 증권감독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부인은 오랜세월동안 경영해오던 약국을 처분했고 남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원철씨.41세.중형 S증권사의 영업부 차장이었던 사람. 모범적인 증권사직원으로 회사의 표창까지 받았던 절정기의 문턱에 섰던 증권맨.이 김차장은 지난해 5월 고객과의 분쟁끝에 분신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신나를 쏟아부은 다음 라이터 불을 질렀고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고객을 부등켜안은채 갈등과 마찰로 지친 1년여의 시간들을 동반마감했다. 분쟁금액은 불과 1천5백만원. 같은 테니스 클럽회원이기도 했고 친구사이이기도 했던 고객 C씨와의 악연은 지난 93년 6월, 고객 C씨가 3천2백만원의 주식투자자금을 김차장에게 맡기면서부터. C씨는 사실상 김차장에게 투자의 모든 것을 맡겼지만 투자손실이 커지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속절없는 주가앞에 우정은 배신으로 변질되어갔다. 분신자살한 다음 회사직원들이 김차장 집을 찾았을때 남겨진 것이라고는 아내와 외동아들 그리고 하남시 풍산동의 움막같은 비닐하우스집이 전부였다. 그동안 고객들의 자잘한 투자손실들을 메꾸어주느라 집같은 것은 처분한지도 오래됐다. 증권가는 이같은 증권맨들로 넘쳐나고 있다. 증권투자가 토해내는 열광과 환희의 절반은 이들 실패의 이야기가 채우고 있다. 지난해 증권회사의 각종 금전사고는 모두 14건,사고금액은 1백47억.피해자가 있고 비난받는 증권맨이 있다. 그러나 사고를 내고 도주하거나 죽은 사람들이 거금을 착복했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대부분의 증권사고는 시세의 파도를 잘못탄 끝에 감당못할 금액으로 손실이 늘어난 결과일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누가 더 나쁘다고만 할수도 없다. 잘못 끼워진 단추같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시세의 부침에 따라 결국엔 난파선에 올라타야하는 희생자들이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