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46) 제2부 진사은과 가우촌 (7)

우촌은 잠시 시를 지어 읊는 것을 멈추고 보름달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떠나온 가족들이 새삼 그립고 홀로 된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여겨졌다. 우촌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시를 계속 지어나갔다. 아, 이 몸은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 누가 이 달 아래서 나와 벗할까 달빛도 내 마음 알아주는 듯 고운 내 님의 방 먼저 비추려나 우촌은 그 여인도 오늘밤 자기처럼 저 달을 바라보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 여인이 우촌 자기를 그리워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도 달리 없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우촌은 마음속이 뒤틀리면서 비분강개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사내 대장부로서 포부를 아직 이루지 못한 자신이 서글프고 이런 자기를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리워하는 여인이 있어도 그 여인을 받아들일 만한 물질적인 여유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높여 시를 지어 읊었다. 궤속의 구슬은 좋은 값 쳐줄 사람을 찾고 경대속의 비녀는 날아오를 때를 기다리네 날아오를 때, 즉 시비는 우촌 자신의 자가 아니던가. 이때 마당 한모퉁이에서 우촌의 시를 엿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진사은이었다. 우촌이 시 읊기를 마치자 사은이 헛기침을 두어번 하며 우촌에게로 다가갔다. "우촌형, 정말 포부가 깊구려" 우촌이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아니, 언제 오셨습니까. 이런 누추한 데까지" "허허, 오늘이 중추가절 아닌가. 식구들과 잔치를 벌이고 나서 생각하니 우촌형이 이 명절에 절간방에서 쓸쓸하게 지낼 것이라 여겨져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 하인들에게 서재에다 술상을 차려놓으라 해놓고 이렇게 우촌형을부르러 온 걸세. 우촌형이 달빛을 받으며 시를 읊는 것을 들으니 과연 내가 잘 데리러 왔구나 싶구먼. 사내 대장부의 비분이 담겨있는 시더구먼" "아유, 비분이랄 거야 있습니까. 그저 달도 밝고 해서 옛시인의 문장을 한번 외어본 것 뿐이조" 우촌이 짐짓 겸손하게 두 손을 모으며 대답하였다. "자, 오늘은 온갖 근심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술이나 거나하게 한잔 합시다. 가시지요" 사은이 이끄는 대로 우촌이 사은의 집으로 가 서재에 차려진 술상을중심으로 마주앉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