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그림과 관상 .. 이종상 <화가/서울대 교수>

옛 화론에 "산에도 관상이 있다"(곽희.임천고치)고 했다. 자연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다는 말이다. 이런 점이 풍경화와 다른 우리 산수화의 우수성이다. 동양의 예술관이 후소론적 윤리에 바탕을 두고있음도 이때문이다. 집안에 무심히 걸려있는 한폭의 그림이 집안분위기와 인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듯 싶다. 눈만 뜨면 제일먼저 마주치는 침실의 벽, 태어나면서 누워 올려다 보던 액자속의 형상들이 어떤 인격체의 소리와 냄새로 몸에 스며들어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이발소 의자에서 보이는 그림이 안방의 그것과 닮았을때 평온함을 느끼며깊은 잠에 빠져들 것이고, 술집에 둘러쳐진 병풍그림이 고향집에 그것과 같을때 밤새는줄 모르고 눌러앉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는 왠지 낯설어 곧 자리를 뜨지만 박물관이나 전람회장에서는 마냥 흐뭇한 마음에 젖어드는 사람을 보면 부모들의 안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니 그림한점을 집안에 걸어둘때도 그 관상을 보아 좋은 말씀과 향기가 스며나오는 것을 택해야하는 것이 물론이다. 누구나 좋은 작가의 걸작을 갖고 싶어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작품은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는다. 작품의 값은 시장경제의 원칙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지 작가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 또한 질높은 작품을 주장하는 길은 재력보다 높은 안목이다. 높은 안목을 키우는 바탕은 깊은 생각이다. 최근 화랑가는 "한집 한그림 걸기"소품전으로 떠들썩했다. 미술의 해를 맞아 한번쯤은 해볼만한 잔치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걸핏하면 작품값을 공산품이나 쌀값에 비유하는 비문화적 풍토속에서 이런 행사는 예술의 평준화행사로 오해될 소지가 많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일간지 광고란에 등장한 "대가 작품액자값에 봉사"한다는 내용의 상행위와 혼돈하는 어리석음도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