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정혜자 <금호현악사중주 기획부장> .. '팔담'

시간에서, 일에서, 인간관계에서, 예금통장에서 단 한치도 자유로울 수 없는게 우리네 삶이다. 이런것 외에 매일 밥상차리는 일에서조차 꽁꽁 묶여있는 사십의 보통여자들. 어느날 어런 몇몇이 모여 "팔담"을 만들었다. 여덟개의 몸이라는 팔담. 회장인 박경인씨는 광주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이 재활할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한다. 양현숙은 광주YWCA어린이집 원장.선희숙은 청소년근로복지회관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의 생활을 지도하는 복지사이고 박효숙은 여성의 전화 대표로 활동했고 이혜숙은 광산구청가정복지과에서 여성 어린이 문제를 맡고있다. 양정숙은 가정법률상담소 간사로 매일 실타래처럼 얽힌 기구한 여성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풀어주는게 일이다. 김원자는 전남일보에서 문화데스크로 일하다 최근 논설실로 승천(?)한 여성이고 "팔담"을 당분간 밖에서 관조하겠다고 버티는 정은진기자까지 해서 여덟이다. 나는 곁에서 0.5당으로 참여중이다. 하필 이름에 못"담"자가 들어간 연유가 재미있다. 어릴때 읽은 나뭇꾼과 선녀얘기에서 비롯된것.선녀가 나뭇꾼이 숨겨둔 옷을 찾아입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경을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시원한지 모임이름을 처음엔 팔선녀로 지었었다. 아무래도 팔선녀는 너무 직설적이니 조금 은유로운 멋을 내자해서 못담자가 되었다. 다른 이름은 "자연의 친구들"이다. 이 씩씩한 여성들이 모여 처음한일은 무등산보호운동이었다. 휴식년으로 쉬고 있는 무등산에 올라가 곳곳에 쌓인 플라스틱을 치우고 쓰레기를 모아 산밑으로 나르는 일을 참으로 안방을 닦는 기분으로 해냈다. 다음은 "영산강을 살리자"캠페인에 나섰다. 검게 죽은 영산강을 푸르게 살아숨쉬는 호남의 젖줄로 되살리는 일은 이 여덟의 모성애가 언제까지나 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얼마전에는 지리산 고운동에 별장을 마련했다. 고운 최치원선생이 기거하며 책을 지었다는 그곳에 한 경상도 총각이 끌과 망치로 아담한 목조방을 들이고 봉매산장이라 이름지었다. 모자라는 건축비를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팔담이 그동안 모아두었던 이백만원을 선뜻 내주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봉매산장주인의 뜻에 공감했기때문이다. 산장주인이 그 답으로 산장중의 방한칸을 "팔담실"로 내주었다. 팔담은 일년에 한두번 그곳에 간.지금 철쭉이 만발한 지리산.봉매산장에서 꽃보러오라는 전갈을 받았다고 내게도 권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