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삶의 지혜 .. 장명선 <외환은행장>

얼마전 아끼던 직장후배 한사람을 잃었다. 명문대학을 나와 미국유학과 해외근무를 거친 국제금융분야 전문가로서 은행에서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고 유능한 중견간부였다. 뜻밖에 지병을 얻어 변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유가족에게 혹시 평소에 고인이 무슨 큰 고민이라도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자녀들도 잘 크고 가정도 화목해서 행복했었는데 한가지 지난해부터 다시 해외근무를 희망하면서 약간 초조해 했었다고 했다.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서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터인테 무엇이 그렇게 조바심이 나서 마음고생까지 겹쳤는지 아쉬웠다. 20여년전 이대교회에서 김동길교수로부터 들었던 설교속의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친구 한분이 이북에서 내려와 고생 고생하며 20억원이나 되는 많은 재산을모았는데(당시로는 굉장히 큰돈 이었다), 그중 절반정도를 증권투자에서 날려버리자 속이 상해 들어눕게 되었다고 했다. 김교수께서 남은 10억원도 큰 재산이고 그것으로 다시 20억원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위로했지만 결국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겼다는 것이다. "만일 그분한테 깊은 신앙심이 있고 마음이 가난하고 범사에 감사할 줄 알았으면 결코 그런 일은 없었을텐데"하고 설교하시던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것 같다. 나도 40년가까이 은행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 승진도 빨리 하고 싶고 모두가 선망하는 부서에서 일도 하고싶어 조바심을 내본적도 있었고, 또 어떤때는 후배에게 추월을 당해 그밑에서 화려한 포스트는 커녕 한직으로까지 밀린적도 있었다. 그때는 낙심도 컸고 고민도 불평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나는 평생을 손해보듯 사시면서도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잊지 않으셨던 선친의 가르치심을 항상 되새겨보곤 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은행생활을 하고있는 선배로서, 나는 아직도 오랜세월을 경쟁하면서 보내야 할 후배들에게 가난한 마음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지혜"를 한번쯤 꼭 음미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