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1일자) 시계를 거꾸로 돌린 투자제한

재정경제원이 지난 9일 발표한 "해외직접투자 자유화및 건실화 방안"은 "자유화"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영뚱한 규제신설의 대표적 사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듯 싶다. 얼핏 포장만 보면 해외투자 제한업종을 대폭 축소하는등 이른바 "자유화"냄새를 풍기고 있지만 핵심 내용은 거액 해외투자에 대한 규제강화로 짜여져 있다. 즉 해외투자액이 1억달러 이하일 때는 10%,1억달러를 넘을 때는 초과분의 20%를 자기자금으로 조달토록 자기자본 비율을 신설하고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본사의 지급보증도 강력히 규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기업의 세계화전략과 해외투자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이같은 규제방안을 마련하게 된 배경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해외투자가 잘못되면 국내 본사의 재무구조까지 부실해질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며,또 자동차 전자등 대형 전략산업들이 모두 해외로 빠져 나간다면 국내 산업이 공통화돼 일자리등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전략에 따라 기업이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대형 해외투자를 몇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 하여 정부가 앞장서 가로막으려 하는 것은"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과 같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규제완화라는 정책기조에 역행하는 처사가 아닐수 없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출범했고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그것도 3년전에 폐지한 규제를 부활시켜 기업활동을 제약하겠다니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금리가 싼 해외자금을 못쓰게 한다면 기업의 금융부담이 늘어나 오히려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소지가 있다. 더구나 국내 본사의 지급보증까지 규제하는 것은 금융자율화에도 역행하는처사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국내산업 공동화우려도 지나치게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대기업의 해외투자는 특히 중소기업의 인력난 완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원자재와 중간재를 계속 공급받을 것이므로 무역지향 투자가 될 수 있다. 시대는 변해 한국기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국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사고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국내 기업을 붙잡아두고 외국기업을 끌어들이려면 투자환경을 개선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대부분의 해외투자가 열악한 국내의 기업경영환경,고금리,고지가,고임금과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미뤄지고 있는 데도 이의 개선은 도외시한채 만만한 국내기업을 상대로 이들의 해외투자만 규제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정책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세계로 뻗어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을 존중한다는 전제위에서 사회간접자본을 충실히 정비하고 물가 금리 임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한편 기업활동을하기 쉽도록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등 국제경쟁력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