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4일자) 대북 경수로협상 타결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이 경수로 공급협정 협상을 마침내 타결함에 따라 대북 경수로사업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첫 발판이 마련됐다. 지난해 10월 북한과 미국이 북핵동결과 경수로제공 원칙에 합의한 후 1년2개월만에 사업추진을 위한 계약서가 작성된 셈이다. 15, 16일께의 공식 서명절차를 남겨놓고 있지만 양측이 자신들의 주장을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타결을 봤다는 것은 심상찮게 돌아가는 북한의 최근 동향을 감안할때 남북간 긴장완화의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한국형 경수로의 관철 대가로 엄청난 비용부담을 감수해야 할 판이지만 좀더 멀리보면 한반도가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또 한국이 참여한 KEDO라는 국제 컨소시엄이 처음으로 북한에 진출케 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의미도크다. 그러나 한 고비는 넘겼다지만 갈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북한 경수로건설은 완공까지 10년이 넘게 걸리는 방대한 사업이다. 틈만 있으면 한국의 역할을 축소시키려는 북한당국이 언제 어디서 느닷없이어떤 요구조건을 들고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40억달러 넘는 경비 부담도 앞으로 치열한 줄다리기를 해야할 문제다. 총경비의 60~70%를 우리가 대고 나머지를 미.일 등이 부담하기로 양해가 돼있지만 언제 미.일 양국이 국내사정을 이유로 발뺌을 하려들지 모른다. 이번 협정타결이 있기까지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대북 정책에 있어 큰 교훈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대북 협상에서는 비록 인도적 문제라 하더라도 원칙없는 양보가 능사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의 쌀지원 결과만 봐도 그렇다. 북한은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우리가 지원한 쌀을 군량미로 비축한 것으로드러났다. 우리가 15만t의 "군량미"를 대준 대가는 첨단 공격용 무기의 휴전선 전진배치와 무장간첩남파, 대남 비방격화 등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경수로 협상타결은 또 우리에게 대북 협상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튼튼한 경제력이 뒷바침돼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이번 뉴욕 협상에서도 북한은 경수로건설비 등의 상환기간연장과 송배전 시설및 핵연료 가공공장의 제공등 무리한 요구를 되풀이 했으며 그때마다 미국측이 이를 거절할수 있었던 것은 "돈줄을 쥐고 있는"한국측의 눈치를 보지 않을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측도 결국 한국의 동의없이는 미국의 약속을 받아낼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 순간에 무리한 요구들을 철회했다는 후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경수로 협정타결은 우리의 경제력이 얻어낸 성과라고 할수 있다. 앞으로의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북한의 변덕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력을 키우고 그 경제력에 바탕을 둔 실효성있는 정책을 일관성있게 밀고 나가는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