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재계 인사 특징] (중) 임원 인플레 .. 이사대우 무더기

올해 기업들은 호전된 영업실적을 바탕으로 사상 유례없는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승진인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신임임원인사. 삼성그룹 정기인사에선 회사원의 "별"이란 이사보(대우)가 2백50명이나 탄생했다. 현대나 LG그룹도 1백50명이 넘는 임원을 새로 배출했다. 말 그대로 임원 풍년이다. 시카고 대학 경영학 석사로 LG그룹 경영혁신업무를 맡아온 조준호 전문위원은 36세의 나이로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올해 새로 임원으로 승진한 이중 최연소다. 부장으로 승진한지 1년이 채 안돼 이사로 "발탁된" 이들도 다수 생겨났다. "두단계 특진, 발탁인사"는 올해 재계 정기인사의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다. 그러나 임원으로 "발탁"된 이들 모두가 상무나 전무로 승진하는 것은 아니다. 상무는 커녕 이사대우나 이사보에서 소위 "꼬리"를 떼지 못하고 자문역으로 밀려나는 임원들도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승진의 길은 멀고 험난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번 정기인사에서 이사 승진 대상자중 절반이상이 "대우"를 떼지 못했다. 3-4년째 꼬리를 달고 다니는 이른바 "유성"들도 수두룩하다. 과거처럼 2년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꼬리를 떼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사대우에서 이사로 승진하는 데만도 3-4년이 걸린다. 그나마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승진이 가능하다. 이사대우 풍년은 이렇듯 "임원 인플레"의 한 단면이다. 많이 승진하다보니까 임원의 가치도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다. 만족도도 예전같지 않다. "이사대우? 빚좋은 개살구다. 그래도 임원이면 예전엔 회사의 주요 정책을 결정 할 수 있는 위치라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요즘 웬만한 기업에서 이사는 의사결정은 커녕 실무만 맡겨줘도 감지덕지다. 팀제 도입으로 팀장을 맡지 못하는 이사들도 나오는 시대 아닌가."(D전자 P이사) "별"을 달아도 하는 일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은 부장이랑 똑같이 하고 대우만 임원처럼 받는" 반쪽짜리 이사들도 수두룩하다. 진짜 별을 달지 못하고 사라지는 별들도 많다. 임원 인플레가 낳은 부산물이다. 임원들간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삼성그룹은 올해부터 전 임원에 대해 능력급제를 실시키로 했다. 능력급제의 취지는 지급받는 보너스의 차등폭을 넓혀 임원들간의 실질적인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 직급간 보수 구분을 명확히 하던 과거의 관행을 허물겠다는 뜻이다. 실적이 나쁘면 상무급 임원이라도 이사보다 연봉이 작을 수 있다. 사뭇 충격적인 보수체계다. 임원 인플레는 결국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임원승진 수요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산물이다. 직급은 늘어나지 않는데 반해 조직은 계속 늘어나는 "90년대"식 인사적체의 또 다른 양상인 셈이다. 대기업 그룹이라면 전무급 정도는 돼야 실제 주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하급임원인 이사는 실무형 임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예전에 과.부장들이 하던 일을 임원이 처리하는 경우마저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이젠 팀제가 일반화돼 팀장을 맡지 못하면 임원이라도 별 의미가 없다. 공격형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발탁인사도 임원 인플레에 한몫하고 있다. "발탁인사"란 발탁된 사람간의 경쟁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발탁된 임원들은 "조진조퇴"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기 일쑤다. 이래저래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승진"이요 "발탁"인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