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9일자) 개방원년 맞은 유통시장

유통시장 개방원년을 맞아 국내 유통업계는 본격적인 지각변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신업태 할인점포인 회원제 창고형클럽들 사이에 치열한 가격파괴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유통시장의 가격파괴를 주도해온 프라이스클럽과 킴스클럽등 창고형 할인점들은 지난 17일 또 하나의 경쟁업체인 한국마크로의 인천점 개장에 맞춰 대부분 상품의 판매가격을 최고 15% 가까이 인하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마크로가 외국 자본으로는 국내에 첫 진출한 대형 할인점인데다 국내유통시장 전면개방 이후 국내외 업체간에 처음 벌어지는 가격인하전쟁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업태 경쟁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창고형클럽들의 치열한 싸움은 앞으로 기존 유통업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전망이다. 가격경쟁력에서 할인업체에 뒤지는 지역 백화점들과 슈퍼마켓 재래시장 뿐 아니라 제조업체들의 대리점체제까지도 뒤흔들어 놓을게 뻔하다. 물론 외국 유통업체들의 국내진출에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체들로서는 수입품과 경쟁하기 위해 품질향상에 신경을 쓰지 않을수없으며 유통업체들은 외국업체에 대항할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소비자들로서는 상품의 선택폭을 넓힐수 있게 된다. 치열한 판매경쟁에 따른 가격파괴 현상이 심화될 경우 물가측면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수 있다. 그러나 대비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시장이 전면개방됨에 따라 경쟁력이약한 국내 유통업체들은 존립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큰 위협앞에 놓이게 됐다. 지금 우리 유통업계가 당면한 문제들은 유통업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내 전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유통산업의 문제를 범산업적 시각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국내 유통거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 유통업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요망된다. 특히 외국 유통업체의 진출이 할인점 쪽에 집중되는 추세여서 이들 영세 중소 유통업체들의 도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대우경제연구소의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3%가 "국내 유통시장은 중소업체들이 도태된 가운데 외국업체와 국내 대기업으로 양분될 것"이라고 답변한 사실은 유통업계에도 양극화현상이 두드러질 것임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국내 유통거래를 국내외 대형 업체들이 모두 차지한다는 것은 산업발전에도결코 유익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수혜자로 하여금 혜택의 일부를 피해자에게 돌리도록 하는 보상정책과 중소 유통업체의 전문화정책을 보다 과감히 추진해야 하리라고 본다. 시장의 전면개방에 따라 혁명적 상황을 맞고 있는 국내 유통업계로서는 경영혁신 시설근대화등 가시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는 서비스 개선에 유통혁명의 바탕을 두어야 함을 있어서는 안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