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패션대국으로 가는 길 .. 박성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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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상점은 대부분 오전10시30분이나 돼야 문을 열고도 낮12시가 되기 무섭게 셔터를 내린다. 점심시간이 끝나 다시 개점하는 것은 오후3시,그런다음 오후 5시30분이나 6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보다 높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이탈리아가 이처럼 급성장한 것은 디자인산업,그중에서도 패션산업 덕분이라고들 한다. 브랜드에 따라 스카프 1장이 청소기 1대, 여성정장 1벌이 소형자동차 1대 값과 맞먹을 만큼 부가가치가 큰 패션산업 발전에 힘을 기울인 결과 세계제일의 패션대국 프랑스를 위협하며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막스 마라나 조르지오 알마니등 유명이탈리아브랜드 투피스 1벌의 국내 가격은 대기업과장의 한달 봉급을 넘는다. 니드제품으로 널리 알려진 베네퉁의 값 또한 만만치 않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국의류산업협회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의류수출은 89년 87억6,000만달러를 고비로 해마다 줄어 95년에는 겨우 47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수입은 7,000만달러에서 무려 13.4배나 증가한 10억1,000만달러였다. 지난 1월의 의류수입은 8,000만달러로 이런 추세라면 올해 전체 수입은 15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지난해 국내의류시장의 수입브랜드는 라이선스 36개 직수입 108개 등 144개로 전체 신규브랜드 200개중 72%를 차지했다. 80년대말까지 세계5위의 의류수출국이던 우리나라가 의류수입국으로 바뀌는 동시에 세계각국 브랜드의 각축장화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셈이다. 그러나 상황은 수치로 나타난 것만큼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듯 보인다. 수입의류에 시장을 몽땅 내줄 것같던 국내 유수의 디자이너와 내셔널브랜드업체들이 어느 사이 전열을 정비, 고부가가치 패션상품으로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까닭이다. 진태옥 이신우 이영희 트로아조 김영주 김동순씨 등이 프랑스와 미국 이태리 일본등에서 패션쇼를 개최, 인지도를 높이고 있고 내셔널브랜드업체인 데코 신원 나산 진도 캠브리지등도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 홍콩 미국등에 매장을 열거나 지사를 설립, 자체브랜드 제품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데코가 지난해부터 소고와 파르코 긴데츠등 일본 유수의 백화점과 패션전문점에 데코 텔레그라프 아나 카프리 데코컬렉션등 자체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잇따라 개설중인 것 또한 한국패션의 세계시장 진출 가능성을 입증하는 한 신호로 여겨진다. 지난해 3월부터 올3월까지 데코가 개설한 메시지 매장은 총6곳, 연말까지 10곳, 내년말까지는 30곳으로 확충한다는 소식이다. 메시지 매장이 이처럼 늘어나는 요인은 뛰어난 매출실적 때문. 가와구치 소고백화점 매장의 경우 지난해 120개 입점브랜드중 일본브랜드인 핑크하우스에 이어 매출 2위를 기록함으로써 추가매장 개설이 쉽도록 했다는 것이다. 데코제품이 다른곳도 아닌 일본시장에 이처럼 뿌리를 내리는데 대해 가와구치 소고백화점 야마자키 츠토무상무는 이라고 말한다. 40세미만 여성의 경우 옷의 디자인과 가격만 살피지 어느나라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다는 설명이다. 오사카 긴데츠백화점의 패션바이어 또한 메시지매장 입점을 결정한 데 대해 "고객들이 데코와 텔레그라프, 아나 카프리 등을 계속 찾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93년부터 프랑스파리의 프레타포르테켈렉션에 참가했던 디자이너 이신우씨 또한 올봄에는 패션쇼를 열지 않았는데도 쇼룸을 통해 상당한 양의 수주를 받았다고 전한다. 결국 지금부터라도 좋은 디자인과 적정한 가격으로 승부하면 우리나라 패션의 세계시장 진출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말이 된다. 더욱이 지금 세계 패션계에는 동양바람이 불고 있다. 구미의 유명패션디자이너들은 너나 할것 없이 아시아의 민속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려 애쓴다. 아시아인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패션은 더이상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제 우리의 소비자도 프랑스나 이태리 옷은 무조건 좋고 따라서 정장 2벌만사와도 비행기삯이 빠진다는 식의 외제옷 구입여행행태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디자이너브랜드와 내셔널브랜드 모두 진정 좋은 소재 개성있는 디자인의 옷승 만든 뒤 거품없는 가격을 책정, 제철에 제값을 받고 판매하는 풍토를 만들때가 됐음도 물론이다. 패션사와 소비자가 서로를 믿고 격려할 때 21세기의 한국은 20세기의 프랑스와 이태리 못지않은 패션대국으로 우뚝 설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