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미술의 거리 .. 김창실 <선화랑 대표>

세계 어디에나 그 나라의 문화를 대변하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뉴욕의 소호가 그렇다. 소호란 뉴욕맨하탄의 휴스턴가와 커널가 사이에 위치한 미술의 거리를 일컫는다. 원래 공장 창고등이 밀집돼 있던 지역이었는데 그같은 시설들이 없어지고 비게 되자 공간이 큰 점에 착안, 가난한 예술가들이 불법으로 거주하면서 예술의 거리로 바뀌었다. 특히 70년대후반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오 카스텔리화랑이 이곳에 옮겨온것을 계기로 페이스갤러리등 유명화랑이 잇따라 입주, 오늘날 세계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현재 이곳에는 위의 두 화랑외에 소나밴드화랑, 메리문화랑등 수많은 화랑들이 저마다 개성있는 전시회를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조류를 창출해 내고 있다. 재스퍼 존스, 라우젠버그, 짐 다인, 르랑크 스텔라, 올덴버그등 20세기 현대미술사의 거장들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인 점은 오늘날 세계미술에서 소호가 차지하는 위치를 대변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의 거리는 누가 뭐래도 인사동일대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인사동같은 미술의 거리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미술거리로서의 인사동의 역사는 깊다. 조선조에서 일제시대를 거치는 동안 도자기와 고가구 고서적등 골동품을 취급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고미상가가 형성됐는데 여기에 70년대부터 서양화를 취급하는 화랑이 들어서면서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이색지대로 탈바꿈됐다. 현재 인사동일대에는 고미술취급점 80여곳과 현대미술을 다루는 화랑 60여곳, 표구사 고서점 전각등 관련분야 상가 3백여곳등이 자리잡고 있다. 숫자상으로도 세계적인 미술의 거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외국인관광객이나 외국의 미술관련 종사자들이 내한하면 의레 인사동일대를 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미술의 거리인 인사동에 빠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공원이다. 외국의 경우 미술의 거리라고 하면 의레 공원이 함께 있어 누구나 편히 쉬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반해 인사동에는 잠시 다리를 쉴 벤치 하나 없다. 서울시에서 20여년전부터 계획해 놓고 있는 인사동 로터리공원이 하루속히조성된다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관광객들에게도 더욱 기억에 남는 거리가 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