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신조류 경영 새흐름] 대기업 구조 재구축 "활발"

삼성 LG등 대기업들이 "사업 철수"를 통한 구조 재구축(리스트럭처링)에 나서고 있다. 이른바 "참여와 철수의 경영학"이 국내 기업에 도입되고 있는 것. 이는 또 21세기 "메가 컴피티션(대경쟁)시대"를 겨냥한 새로운 경영전략이기도 하다. "사업 철수"와 "집중"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이건희회장 지시로 각 계열사별 "사업철수의 룰"을 작성중이다. 전자소그룹은 이미 사업철수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어 수익성을 갖춘 품목중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자체를 이양키로 했다. "연내 반도체 완제품 사업중 일부를 중소기업에 이양한다"(김광호 전자부회장)는 방침도 이래서 나왔다. 중공업 역시 구체적인 철수품목과 원칙을 확정했다. 사업정상화가 어려운 배처플랜트 콘크리트믹서용 설비등의 사업은 포기하는 대신 환경설비 선박용엔진 발전설비등 3개 분야를 주력사업으로 육성키로 한 것. 중장비부문에서도 10개의 기종을 5개로 축소, 수익성이 낮은 부문은 경영자원 투입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LG그룹은 사업 철수를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철수의 룰은 "1등 주의".사업성이 좋더라도 장기적으로 1등을 하지 못하는 사업에선 과감히 손을 떼겠다는 의미다. 특히 각 CU(사업문화단위)별로 기존사업을 전면 재검토, 올 연말까지 그룹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철수할 품목과 사업을 확정키로 했다. 그룹이 주도적으로 나서 철수할 품목과 사업을 조정하겠다는 얘기다. 이미 전자악기 가스보일러(LG전자) 페이저(LG정보통신)사업 등은 포기 방침을 확정했다. 현대중공업이 선박기계 제작부문을 중소기업에 이관키로 한 것이나 대우전자가 줄곧 자체생산을 고집하던 유.무선 전화기 생산을 내년부터 주문자상표생산방식(OEM)으로 공급받기로 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같은 철수 전략은 21세기 유망사업을 육성키 위한 개별 그룹 차원의 사전정지 작업 성격을 띠고 있다. 수익성위주로 그룹의 사업구조를 재편키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멀티미디어나 통신 등 미래의 유망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철수"는 필요하다.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이 투입되는 차세대 유망 산업에는 경영자원을 순간적으로 투입하는 "집중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 그런점에서 철수와 집중은 동전의 양면이다. 철수가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총수들이 직접 "철수"를 진두 지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은 이달 초 미국 샌디에이고 사장단 전략회의를 통해 "철수할 사업을 고르는 것은 수종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며 "계열사 이기주의를 벗고 장기적 관점에서 포기사업을 고르라"고 지시했다. 구본무 LG회장 역시 "과거에도 철수의 원칙은 있었지만 해당사업부의 반발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외부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서라도 원칙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룹의 경영시스템과 사업철수의 전략이 맞물려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철수를 키워드로 한 "경영학"인 셈이다. 따라서 사업 철수는 곧 집중을 위한 전략이다. 철수하는 사업에서 생기는 인력과 여유자금을 유망분야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LG전자의 경우 PC는 펜티업급, TV는 와이드 TV, CD-롬은 8배속 식으로 사업대상을 압축시킨 형태로 집중을 실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멀티미디어 총괄"조직을 신설, 기존 영상본부와 정보기기본부의 인력을 흡수, 통합했다. DVD(디지털비디오디스크)등 멀티미디어에 대한 자원집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다. 이는 특히 지금까지 결재단계 축소나 조직 슬림화 등에 머물던 리스트럭처링이 사업부문을 통째로 매각하거나 포기하는 단계로까지 진전되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한국식 철수 전략의 성패는 아직 불투명하다. 정리해고나 대대적인 감원을 기초로 한 미국식 리스트럭처링(GE)과 "집중"은 하되 "철수"는 없는 일본식 경영개혁(도시바)의 중간단계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업 철수"는 있지만 대량해고나 감원은 없는, 결국 기존인력을 타 사업부문에서 흡수하는 형식의 한국식 철수 전략이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