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429) 제10부 정염과 질투의 계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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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이 대부인의 꾸지람을 듣고 나가자 희봉은 전신에 맥이 빠지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독기로 뭉쳐 있던 마음이 풀리면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대부인과 형부인, 왕부인 들이 희봉을 달래며 위로하였다. 가련을 뒤따라온 우씨도 한마디 하였다. "남자들이란 원래 주책바가지라 틈만 나면 바람을 피우려 한다니까. 일일이 거기에 신경을 쓰고 살다가는 제명을 다 못 살지. 그러니까 어떤 때는 적당히 눈을 감아주는 것도 필요해. 그러면 남자들이란 바람을 피울 대로 피우다가 제풀에 시들해져 마누라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거든. 우리도 살아오면서 다 경험한 바가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우씨의 남편 가진은 며느리 진가경까지 범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으니우씨의 마음 고생이 어떠했겠는가.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러고 살 수가 없는 걸 어떡해요. 내 몸종인 평아까지 남편이 건드리니 평아 그년이 나를 업신여기는 것도 같고" "설마 평아까지 건드렸을 리가 있나" 왕부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르지. 평아가 무척 얌전한 것 같아도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는지" 형부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편을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의심스러운 법이지. 그러다 보면 옆에 있는 시녀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늘 얻어맞기 일쑤이지" 왕부인이 끝까지 평아를 두둔하고 나섰다. 평아가 왕부인 눈에는 착한 애로 비친 모양이었다. "근데 포이 여편네가 바람을 피우다가 들켰으니 그 운명이 어떻게 될 건가. 남편이 받아줄 리도 없고. 아마 보따리 싸들고 동네를 떠나야 될 걸" 우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같으면 자결하겠어요" 희봉이 다시 표독스럽게 말을 뱉었다. 왕부인은 금천아의 우물 투신 자살을 떠올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집안 여자들이 이일 저일로 자살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집안에 좋지 않은 흉조가 아닌가. "오늘 있었던 일을 가지고 아랫것들이 동네방네 소문을 내지 않도록 입단속들을 잘 하라고 일러라. 특히 평아가 억울하고 분한 나머지 허튼소리를 하기 쉬우니 평아를 각별히 잘 위로하고 다독거려라" 대부인이 무거운 어조로 분부를 내리자 다른 부인들이 고개를 숙인 채 듣고만 있었다. 희봉은 속으로 이번 사태는 포이의 아내가 자결을 하든지 해야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