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2일자) 어렵지만 절실한 지적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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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군.구청에서 발급하는 지적도를 자세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지적도가 실제의 땅모양과 큰 차이가 있을 뿐더러 표기조차도 일본식 지명표기를 그대로 한글화해 놓은 것을 쉽게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지적제도는 일제가 토지수탈과 징세목적으로 1910~1912년 실시한 토지조사와 1916~1924년 실시한 임야조사 사업의 자료를 골간으로 하여 부분적으로 수정 보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80여년 전에 만들어진 전국의 지적도를 최신 측량 및 정보시스템 기법을 동원, 완전히 새로 만들겠다고 내무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간 재조사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비용이 엄청나 섣불리 나서지 못하던 터에 지난 10일 전국토에 대한 지적재조사 측량사업을 위한 내무부의 입법예고가 나온 것이다. 우선 98년부터 2010년까지 1조2,000억원을 들여 서울과 5대 광역시를 대상으로 전면적인 지적 재조사를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전국을 재조사하는 데는 모두 6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니 이 사업의 방대한 규모를 짐작할만 하다. 현행 지적시스템의 낙후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분쟁과 행정적 손실을 감안할 때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지적 재조사작업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쉽게 공감이 간다. 경남 창원시를 대상으로 한 표본 실측조사 결과 76%가 지적도와 차이를 나타냈다는 내무부의 자료만 봐도 지적재조사의 필요성은 절실하다고 하겠다. 지적 재조사가 완료될 경우 경제 사회 행정등 여러 분야에 걸쳐 나타날 폭넓은 효과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는 토지관련정보의 공동활용체계 구축을 통해 부처간 중복투자를 막을 수 있고 건전한 부동산거래 질서의 확립과 세수증대및 공평과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토지경계에 관한 분쟁을 근원적으로 해소시켜 지적행정의 공신력을 제고시키는 한편 지적도면의 전산화로 지상 건축물과 지하 시설물의 효율적 관리를 돕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해방이후 역대 어느 정부도 손대지 못한 이 방대한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어려움과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조사과정에서 소유면적이 늘거나 줄어드는 사례가 많아 민원의 홍수가 예상된다. 그런데도 이번에 입법예고된 법안은 지적공부상의 권리면적과 관계없이 현재 점유하고 있는 토지의 경계현황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면적증감에 따른 청산기준과 재판절차 등의 규정을 별도로 두지 않아 대량소송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또 6대도시의 지적 재조사에 들어가는 예산 1조2,000억원 전액을 국비로 충당한다는 계획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시.군.구와 공동부담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봄직도 하다. 21세기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오차없는 "땅족보"를 만든다는 것은 과학적 토지정책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적 재조사작업은 땅에 관한한 지나치다할 정도로 민감한 국민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공정하고 신중하게 계획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