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지구촌 여기까지...] (10) 한라자원 파퓨아뉴기니

우지끈 쾅-. 밀림의 정적을 깨는 굉음과 함께 직경이 1m나 되는 거대한 나무가쓰러진다. 나무가 쓰러져 생긴 빈 틈으로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모습이드러났다. 아랫도리만 걸친채 커다란 체인톱으 들고 있는 검은 피부의 원주민인부들. 그리고 그들사이에 우뚝 서 있는 한국인 정규선 대리(31). 이역만리 파푸아뉴기니의 밀림속에서 찾아낸 해외역군이었다. 검게 탄 피부에 텁수룩한 수염의 그를 만난것은 2일간의 육.해.공 여행을 끝낸 후였다. 15시간의 비행에 이어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자동차로 한시간 달려야 했다. 또 "딩기"라는 조그만 모터보트에 2시간가량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했다. 다시 덜컹거리는 트럭에 몸을 싣고 밀림속으로 한시간 들어간끝에 벌목작업을 지휘하는 그를 만날수 있었다. 정대리의 구슬땀이 밀림을 적시고 있는 곳은 한라자원(주)의 "실로부티"벌목장. 파푸아뉴기니의 외딴 뉴브리턴섬 북동쪽 밀림속에 묻혀있는 이곳에는 18명의 한라자원직원들의 투혼과 정열이 샘솟고 있었다. 모두들 조국이 필요로 하는 목재를 공급한다는 사명감에 젊음과 가정생활을 희생시키고 있었다. 한라자원 직원들과 300여명의 원주민인부들이 일하고 있는 이 벌목장은 연간 10만입방m 이상의 싱싱한 목재를 생산중이다. 직경 50cm 이상에 길이 20여m의 통나무로 환산하면 3만5,000개쯤 된다. 금액으로는 연간 1,200만달러. 이중 절반은 한국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일본등지로 수출한다. "정말이지 산림자원이 거의 없는 조국에 목재를 공급한다는 사명감이 없다면 이런 곳에서 견뎌낼수 없을 겁니다" 현장소장 김광호이사는 국내근무에 비해 월급을 좀 더 받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이 오지에서 일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문명세계와 동떨어진 이곳은 자연과의 싸움 그 자체였다. 언제 걸릴지 모르는 풍토병 말라리아, 찌는 듯한 더위, 식인악어들..온갖 위험요소들이 널려있다. 여기에다 시도 때도 없이 덮쳐오는 열대폭우는 나쁜 근무여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자연의 시련이다. 지난해엔 하룻동안 1,0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사무실이 반파되기도 했다. 작업성격상 비만 오면 벌목은 불가능하다. 이때문에 비가 적은 7~11월의 건기에 한해 작업을 사실상 다해야 한다. 따라서 건기가 되면 새벽부터 자정을 넘어서까지 하루에 20시간이상 일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올해는 이상기후탓인지 건기인 9월에도 비가 자주 와 작업이 수시로 중단되고 있다고 현장기획실 김형운대리는 안타까워 했다. 비가 오면 벌목작업과 목재운송및 선적작업은 중단되지만 한라직원들은 항상 업무에 쫓긴다. 매일 아침 7시 업무에 들어가 밤늦도록 일하는게 보통이다. 100여대의 중장비와 트럭을 손보고 벌목지역을 사전 답사하느라 일요일도 없다. 한달에 한번 3일 연속 휴무일이 있기는 하지만 원주민인부들만 쉴뿐 직원들은 일손을 놓지 못한다. 자연과의 싸움도 힘들지만 더 골치아픈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예측불허의 원주민들이 바로 그것이다. 김동수관리과장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이 작업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걸핏하면 길다란 부시나이프(원주민 칼)를 들이대고 불도저나 포클레인의 키를 뺏어갑니다. 그리고는 돈을 안주면 키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떼를 씁니다. 멋모르고 덤볐다가는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정부의 치안이 거의 미치지 않는 이곳에선 원주민의 말은 곧 법이다. 심사가 뒤틀리면 벌목현장에 찾아와 말뚝을 박고는 이것을 넘어오지 말라고 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를 무시할 경우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 파푸아뉴기니정부로부터 벌목권을 따냈지만 원주민이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원주민인부들이 회사기물을 훔쳐가는 일도 허다하다. 이때 섣불리 꾸짖었다가는 목숨을 보장받지 못한다. 작년말 한국인작업반장이 물건을 가져가는 원주민과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너는 해고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그는 원주민의 칼에 원혼의 객이 되고 말았다. 실로부티 벌목사업은 지난 81년 개시됐다. 한라자원이 "남양목재회사"라는 현지법인을 설립한지 2년만이었다. 그후 80년대중반에 여러사정으로 몇년간 작업이 중단된후 89년에 재개됐다. 현지정부로부터 허가받은 벌목지역은 약 18만 로 제주도 크기만하다. 올해 목재생산목표는 12만입방m. 9월초까지 절반이 넘는 6만5,000입방m를 생산했다 앞으로 몇달간은 건기이기때문에 바짝 매달리면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수 있을 것으로 김소장은 낙관하고 있다. 주변에 술집이나 음식점 하나없는 깊은 정글속에 갇혀 "한국판 빠삐용"생활을 하고 있는 한라직원들. 이들에겐 2년 파견기간중 8개월마다 한번씩 있는 3주일의 휴가가 문명생활을 맛볼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한국의 빠삐용들은 자원공급의 첨병이라는 긍지속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자연과 원주민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