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차의 세계] '오스틴 세븐'..영국 승용차 대중화시대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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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8세기 후반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후 기계공업의 본거지가 됐다. 그러나 가솔린 자동차에서 만큼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다소 늦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19세기말부터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고 있을때 영국에서는 아직도 말을 이용한 마차를 고집하고 있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04년에 롤스로이스가,1905년에 오스틴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를 열게 되었다. 1922년 허버트 오스틴에 의해 만들어진 오스틴 세븐은 영국의 승용차 대중화시대를 연 자동차였다. 값이 싸면서 내구력이 뛰어나 고급스럽고 커다란 차만 보던 일반인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많은 사람이 사게 되었고 튼튼해서 중고차로도 인기가 만점이었다. 한마디로 엔트리카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자동차들이 그러하듯 오스틴 세븐도 구조적으로 마차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A"형으로 짜맞춰진 격자형 빔위에 엔진과 변속기를 얹고 뒤로 연장시킨 빔에 후진축을 이어붙인 불안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앞차축과 뒤차축을 묶어주는 프레임이 없어 자동차가 달릴 때마다 앞뒤 차축의 진동이 심했다. 네 바퀴가 각기 따로따로 요동을 치며 차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숙련된운전자에게도 운전이 어려웠다. 왼쪽으로 회전하려면 원심력에 의해 왼쪽바퀴 쪽이 들리면서 오른쪽으로 차가 밀리곤 하였다. 또한 클러치 페달도 몹시 무거워 웬만한 힘으로는 클러치 조작을 할 수가없어 차가 울컥울컥 출발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렇게 차체가 전후좌우로 진동하여 브레이크 케이블은 늘어질대로 늘어져 제동이 쉽지 않았다. 이에 허버트 오스틴은 "브레이크가 좋으면 운전이 난폭해진다"며 차의 약점을 피해나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하지 않게 엔진만큼은 잘 설계되었다. 흥미롭게도 엔진은 오스틴이 아닌 오스틴사의 18세 어린 제도사가 설계했다. 그러나 엔진의 내구성은 뛰어났다. 당시 영국에서는 자동차 세금이 엔진 실린더의 직경 (보어)을 기준으로 부과됐다. 그래서 오스틴은 작은 보어에 긴 행정을 가진 소형 엔진으로 설계 됐다. 이 엔진은 작은 힘이지만 엔진에 큰 힘이 가해지지 않아 충분한 내구력을 갖게 되어 오래도록 쓸 수 있었다. 또한 4명의 어른을 넉넉하게 태우면서 낮은 속도이지만 경제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 이런 점이 오스틴 세븐으로 하여금 세계 2차대전 이전 영 국민의 첫 국민차로서 많은 사랑을 받게 하였다. 1939년 오스틴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30만대의 차가 만들어졌고 이후 많은 자동차의 개발에 영향을 줬다. 김상권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