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날] (좌담회) 수출드라이브 재시동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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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들어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산업 전부문에 걸쳐 침체와 부진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올들어 갑작스레 꺾인 수출증가세와 무역수지적자의 확대는 제조업뿐아니라 다른 연관산업에까지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30일 무역의 날을 맞아 한국경제신문사는 한국무역협회와 공동으로 업계와 학계 인사들을 초청, 우리나라의 수출부진상황을 진단하고 수출위기 타개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 : 유득환 이한구 표학길 정강환 ] 유득환 무역협회 부회장(사회) =올해들어 수출실적이 상당히 저조하고 무역수지 적자폭도 크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을 얘기하기에 앞서 먼저 올해 수출동향을 품목별 지역별로 파악하고 경쟁국들의 상황은 또 어떤가 알아보도록 하지요.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9월 즉 3.4분기까지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전체수출증가율은 5% 정도입니다. 중화학부문 증가율은 3%, 경공업은 마이너스지요. 1차상품인 금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 그나마 이정도 수치가 유지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폼목별로는 유류제품과 자동차, 산업용 전자제품이 좀 나은 편입니다. 그외 철강 컨테이너 석유화학 전기전자제품 등 전반적으로 실적이 부진합니다. 수출지역별로 보면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마이너스성장을 한 셈이고 중국 아시아 러시아 동유럽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수출이 괜찮은 편입니다. 중국의 경우 우리를 먹여살린다고 말할 수 있겠죠. 수출동향을 더 분석해보자면 수출물량은 계속 증가하는데 단가가 많이 떨어지고 있어요. 특히 전자제품 석유화학 철강 등 주력제품들의 단가하락폭이 심합니다. 한편 경쟁국들의 경우 미국이 7%, 대만이 13% 등 수출증가율이 좋은 편입니다. 유부회장 =전반적인 상황을 들었으니 이번엔 업계에서 피부로 느끼는 수출경기는 어떤지 들어보도록 하지요. 정강환 태일정밀 사장 =우선 제 개인적으로는 수출상황이 매우 좋은 편입니다. 저희 회사는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전자부품, 구체적으로 컴퓨터용 헤드와 부품을 수출하는데 저희의 가격경쟁력이 그 어느나라, 어느업체보다 높습니다. 유부회장 =그런 경쟁력 확보가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정사장 =4년전 중국에 공장을 지어 낮은 단가에 생산해오고 있고 숙련된 기술인력을 많이 확보한 덕분이지요. 하지만 업계 전반을 볼 때 저는 우리나라가 이미 3~4년전부터 국제경쟁력을잃어버렸다고 봅니다. 94~95년도 수출이 호황을 보인 것은 경기에 편승한 때문이죠. 지금의 상황은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환상이 사라지고 현실이 드러난데 불과해요. 사실 반도체의 경우 주력 수출품인 16메가제품의 가격이 그동안 너무 높게 책정돼 있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지금 가격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제 가격을 찾았다는 말이죠. 정상적인 가격인데 이렇게 어렵다고 아우성이라면 그만큼 우리의 산업구조가 잘못돼있다는 얘깁니다. 표학길 서울대 교수 =지금의 수출위기는 경기순환적인 측면과 구조적인 원인이 겹쳐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사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작년말부터 이같은 국제수지적자 확대를 우려했는데 정부가 너무 낙관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선 수입증가율은 예상됐던 대로입니다. WTO OECD가입 등으로 시장개방속도가 빨라지면서 건설 자재 식품 등 모든 부문에서 수입이 늘고 있고 이는 어느정도 각오했던 부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수출감소의 신호도 여러 부문에서 왔지요. 우선 엔화 절하, 주요제품의 가격하락, 설비투자의 부진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수출은 전년도 설비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93년도 문민정부가 들어서 초기 설비투자가 활발했던 것이 95년의 수출호황으로 이어지는 식입니다. 사실 지금 더 큰 문제는 95~96년 설비투자가 매우 저조하다는 것입니다. 내년과 내후년, 어디에서 수출증가의 소스를 찾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유부회장 =수출부진에 대한 개괄적인 원인 분석이 됐다고 보는데 그러면 대내외 무역환경변화와 수출부진의 원인을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도록 하지요. 이소장 =우선 혹시나 상대방 쪽에서, 즉 우리 주요수출대상국들의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닌지 검증해보면 미국 일본 독일 등이 한결같이 6~7%가 넘는 수입증가율을 보이고 있어요. 결코 저쪽 사정 때문은 아니라는 얘기죠. 그러면 가장 수출상황이 나빠진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3개 부문을 분석해 봅시다. 우선 반도체의 경우 타국의 공급량이 최근 크게 늘어났어요. 우리상품은 대부분 표준화된 일반적인 상품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공급이 늘어도 타격을 받습니다. 석유화학의 경우 우리 시장은 동남아가 대부분인데 최근에 일본에서 이 지역에 설비투자를 늘리면서 상당한 수요감퇴가 일어났지요. 철강은 일본에 계속적으로 마켓셰어를 빼앗기고 있고요. 우리나라는 결국 원체 좁은 시장을 상대로 하고 있는데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코너로 몰린게 아니냐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반적인 수출전략이 잘못됐어요. 수출아이템이 워낙 평범하고 그나마 특정지역에 제한돼 있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지요. 정사장 =이소장님 말씀에 덧붙이자면 어떤 수출품목도 세계에서 나 혼자 만드는 물건은 없습니다. 어떤 물건에도 경쟁은 붙기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경쟁의 가장 큰 요소가 무엇이냐, 바로 가격입니다. 우리나라는 바로 가격경쟁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이같은 난국에 처하게 된 겁니다. 표교수 =가격이란 것은 임금 지대 자본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금 한국 제조업의 생산대비 소요임금은 1.74로 일본의 1.18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생산대비소요임금은 제조업임금을 국민총생산으로 나눈 수치입니다. 생산대비소요임금을 일본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선 생산성을 높이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의식이 한사람당 생산성에 대해 투철하지 못합니다. 너무 방만한 인력관리와 방만한 투자가 계속돼온 것이지요. 유부회장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간추려보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기술개발을 하거나 코스트를 낮춰야 하는데 둘다 안되고 있다는 얘기군요. 표교수 =거기다가 국내 및 국제상황도 우리에게 불리한 편입니다. 지금 선진국경제를 보면 일본과 미국이 회복중이고 유럽과 기타지역은 여전히 경기가 침체돼 있습니다. 개도국쪽에서는 서남아 인도 파키스탄 남미 등의 경제활동이 활발한 반면 동남아 중국 인도에서는 국제수지적자규모가 높아지고 있지요. 한마디로 주요 수출대상국들의 경기가 안좋다는 얘깁니다. 동남아 개발특수마저 진정되면 예전같은 높은 수출증가율은 실현되기 어려울 겁니다. 국내상황을 보면 올해들어 실시된 정부의 경기안정화 정책의 경우 시기가 적절치 않았어요. 지난해 호황때 시행됐어야 할 에너지가격 현실화정책 등이 너무 늦게 실시되는 바람에 기업을 더욱 어렵게 한 셈이죠. 또 정부에서 수출기업에 주는 각종 인센티브들이 하나하나 줄어들면서 기업들은 벼랑에 몰린 격입니다. 유부회장 =지금까지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각종 원인들을 짚어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 잠재력과 강점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얘기해보도록 하지요. 지금이야말로 위기타개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이 필요한 때가 아닙니까. 정사장 =강점이라면 무엇보다 우리국민의 애국심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니겠습니까. 역사가 증명하듯이 위기때마다 발동하는 우리의 국민적 합심이 또 한번 실현될 수 있지요. 지금 국산담배 국산자동차를 애용하자는 국민운동도 그 증거입니다. 이소장 =맞습니다. 전국민적으로 수출이 중요하다는 마인드가 살아있다는게 큰 강점이라고 봅니다. 또 중소기업까지 국제화마인드가 돼있고요. 정부가 OECD에 가입하면 제반제도들이 선진국형으로 바뀌리라는 것도 희망적인 뉴스입니다. 또한 한국의 브랜드이미지가 세계수준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는 앞으로 수출활력을 찾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모두 대기업들의 자체브랜드 확산노력에 힘입은 덕이지요. 표교수 =대기업들의 대외적응력과 조직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큰 강점입니다. 그리고 수출위기 타개를 위해 기업들은 앞으로 유망사업을 개척하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협조도 중요합니다. 지난번 공기업민영화방침 철회는 시대를 거스르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수출이 안될땐 내수중심의 투자를 해야되는데 정부가 길을 막은 셈이지요. 공기업이 대기업으로 넘어가도 경제력집중에 별 문제가 안됩니다. 효율성을 먼저 생각해야지요. 유부회장 =우리의 강점을 좀더 덧붙이자면 지금 정보통신사업이 크게 발전중입니다. 앞으로의 코스트다운에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가 되고요. 또 OECD에 가입하면 OECD국가들끼리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거대한 중국시장이 옆에 있어 값싼 노동력확보에 유리하고, 아세안국가들의사회간접시설 확대도 우리의 투자를 요하는 부분이겠죠. 강점에 대한 확인은 대강 끝난 것 같고, 이제 위기타개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도록 하지요. 이소장 =지금은 해외 및 국내의 네트워크를 연결시키는 전략을 추진할 때입니다. 지역별 특성을 살려 생산베이스를 다각화하고 이를 연결하는 거지요. 또한 수출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초가 중요합니다. 부품과 소재부터 제대로 돼야 하는데 현재 이부분이 공기업으로부터 공급되고 있어요. 자연히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공기업 민영화는 사실 시급한 문제입니다. 기업들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제 우리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세계속의 경쟁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종 제품의 기준을 국제기준에 맞추는 표준화사업이라든가, 물류공동사업을 함께 벌이는 협력마인드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전문화밖에 없습니다. 영역을 좁혀 세계수준으로 깊게 들어가야 합니다. 정사장 =산업사회초기부터 지금까지 두자릿수 임금인상이 계속돼 왔습니다. 임금이 너무 부풀려진거지요. 이번 기회에 노동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임금수준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또 우리나라의 금리부담률이 총원가의 6%에 해당됩니다. 2% 수준인 경쟁국에 비해 3배쯤 높은 거지요. 금리문제도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고, 물류비용 역시 너무 높습니다. 중소기업들의 물류사업진출을 어렵게 하는 각종 진입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기업들은 기업대로 기술혁신과 생산성향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술개발의 능력이 없다면 그는 더이상 기업가가 아닙니다. 국민경제의 최일선에 선 일꾼으로서 그 정도의 책임감은 가져야지요. 표교수 =수입규제가 풀릴때로 풀린 지금 상황에서 적자규모축소의 해법은 수입억제가 아니라 수출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수출을 늘리려면 대기업의 발을 묶어서는 안됩니다. 대기업으로의 경제력집중을 질곡으로 여긴다면 잘못된 생각이지요. 대기업이 국내에서나 대기업이지 과연 세계의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글로벌한 사고를 가져야해요. 유부회장 =좋은 의견이 많이 나왔는데 이런 것들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정책의 초점이 수출을 늘리는 쪽으로 맞춰져 일관되게 추진돼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바쁘신 중에도 참석해 주신 것 감사하고,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