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치적'이 막는 개혁

또 하나의 위원회가 탄생한다. 농발위 교개위 노개위에 이어 이번엔 금개위다. 금융을 개혁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지당한 말씀이다. 관치 금융의 낡은 관행을 생각한다면 민간인으로 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생각도 옳은 발상법이다. 때마침 일본도 빅뱅이요 미국도 금융개혁론에 불을 댕겨 있다. 그러나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우선 시기다. 지금 다시 시작해 언제 끝내나 하는 것은 소위 "부지하세월론"이다. 격론만 벌이다 상반기를 보내고 정작 큰 문제는 "다음 대통령"으로 기약없이 순연될 것이란 예상이다. 또다른 약점도 있다. 금융완화라는 이름하에 과거 지방은행과 투신사들이 무더기로 설립되었던 일은 금융과 정치의 함수 관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증거들이다. 진입장벽 해제라는 이름으로 산업자본의 특혜성 금융진출이 은근슬쩍 허용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도 그래서 나와있다. 그리된다면 개혁은 곧 스캔들이 되고 만다. 금개위가 재경원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일 수 있겠느냐는 것도 질문의 하나다. 위원회라는 것은 대부분 정부가 이미 확정해 놓은 대책을 합리화하거나(농발위) 위원들간에 대립만을 부른 끝에 결국 정부로 공을 다시 떠넘기는(노개위) 결과가 되고 마는 경우도 허다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 그 자체일 것이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통합은 이 정부가 출범한 직후 어느날 전광석화처럼해치운 소위 "치적"의 부분에 속해있다. 그러나 많은 논자들은 통합 재경원의 무소불위와 전횡도 금융 낙후와 부진한 규제완화의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빅뱅이 기어이 대장성 해체론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벌써부터 일부 재경원 관료들은 "혁명은 없을 것"이라며 분위기를 잡고 있는 중이다. 만일 현재의 재경원 체제, 즉 금융을 지시하고 독점적으로 감독하는 관료 체제를 그대로 두고 금융산업의 개혁을 논한다면 이는 불고기 집에 가서 생선회를 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은과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이 전제 되지 않는다면 이 개혁이 대단히 불철저할 것이라는 점은 예상키 어렵지 않다. "치적"을 건드릴 수 없다면 개혁은 결국 걷돌테고 국민들은 개혁이라는 말에 염증만 더해갈 것이다. 그것이 이 정부가 욕을 먹는 이유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