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벤처기업 투자열풍'] (4) '엔젤(투자자 모임)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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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호텔 비즈니스센터. 지난 7일 이른 아침 이곳에선 말쑥한 차림의 신사 40명이 통신관련 벤처기업인 바하시스템의 CEO(최고경영자)를 강단에 세우고 한시간이 넘게 질문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답변을 마친 CEO가 문밖으로 사라지자 한 신사가 "이분야의 회사에 투자한적이 있는데 결과는 실패였다"며 바하시스템의 투자가치를 논하는 그룹토의를 이끌어갔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기업의 창업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엔젤(개인투자자)조직인 "펜실베니아프라이빗인베스터즈그룹(PPIG)"의 회원들. 이들은 매달 첫째주 화요일에 이같은 모임을 갖는다. "매년 1천여개의 벤처기업이 자사소개를 희망해 오는데 그중 강단에 서게되는 회사는 30개정도"(PPIG의 프레드 뉴버그회장)이다. 최종적인 투자판단은 회원각자의 몫이다. PPIG는 이런 정기모임외에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을 모아 독자적인 심사분석회의를 열고 투자관련 연구회도 조직한다. 미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 투자대상 벤처기업의 사업계획서 평가를 의뢰하기도 한다. PPIG가 지난 4년동안 투자한 벤처기업은 모두 13개사. 투자액은 1천7백만달러에 달한다. 회원인 도널드 그렉크레인씨의 경우 지난 94년부터 6개 벤처기업에 4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중 한 회사가 주식을 공개, 그렉크레인씨는 투자액의 6배인 20만달러의 투자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은행임원 출신인 그가 정작 기쁜 것은 자신의 "비즈니스경험과 지식이 벤처기업을 육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역발전에 이바지하는 엔젤조직도 있다. 보스톤의 "벤처 플래너즈 네트워크"는 전회원이 지역주민들이다. 지역주민이 벤처기업을 육성하니 벤처기업도 지역발전을 등한시 할수 없다. 결국 상부상조를 통해 지역사회와 산업이 동시에 성장하는 것이다. 창업초기의 벤처기업에 자금을 수혈하는 엔젤의 회원수는 줄잡아 1백만명. 연간 투자액은 벤처캐피털회사의 5배수준인 2백억달러에 이른다. 특히 PPIG처럼 다양한 직종과 경험을 가진 투자자들이 모여 적극적으로 유망기업 발굴에 나서는 엔젤조직이 늘고 있다. 최근엔 정보수집과 심사기능이 벤처캐피털사에 못지 않는 엔젤조직도 많다. 이쯤되니 엔젤의 자금만 모으는 벤처캐피털사도 등장했다. 보스턴의 바이맥사가 대표적인 예. 투자자금으로 한번에 최저 25만달러가 필요한 기업에 투자하고 싶으나 돈이 없는 소액 투자자들이 바이맥의 대상이다. 이 회사는 일반적인 창업투자사와는 달리 유망한 벤처기업들을 하나하나씩 엔젤에게 소개하고 어느 업체에 얼마를 투자할지는 엔젤각자에게 맡긴다. 이런 방법으로 바이맥이 지난 92년부터 끌어모은 엔젤은 1백여명. 이들은 12개 벤처기업에 2천2백만달러를 투자했는데 이중 3개 기업이 주식을 공개했다. 이렇듯 엔젤의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엔젤의 자금만 끌어모으는 벤처기업도 늘고 있다. "이전엔 벤처캐피털사에 거절당한 벤처기업만 엔젤에 도움을 청했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엔젤을 선호하는 추세"(실리콘벨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인테렌스 거넷)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미국에서 엔젤은 이제 단순한 소액투자자가 아니라 창업투자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벤처육성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