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이석채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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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관리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은행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은행이 도산해도 정부지원은 없다"는 이석채 경제수석의 한마디가 던친 파문 때문이다. 한보사태로 그렇지않아도 경계대상에 올라있는 국내은행들은 이 말이 보도된 이후로 국제금융시장에서 기피대상으로 취급받고 있다. 단기자금을 빌릴 수도 없고 어렵사리 돈을 좀 꾸려면 3류은행에 적용하는 금리를 물어야 하는 실정이다. 은행가에선 이를 이석채프리미엄 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수석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이른바 빅뱅을 추구하는 마당에 은행이 어려워졌다고 정부가 돈을 대주어 살려준다는 건 말도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은행이 나타나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해 능력있는 기관에 흡수합병되도록 유도해야 할 판이다. 그러고보면 이수석의 발언은 당연한 정도를 넘어 반드시 그리돼야할 옳은말씀이다. 한데 경제원론에 나올정도로 당연한 이 말은 국제금융시장을 온통 들쑤셔 놓았다. 외국의 금융당국과 기관들은 그 말의 배경파악에 나섰고 한국계 은행의 신용도 추락으로 현실화됐다. 일부 외국은행들은 한국의 어느 은행이 쓰러지는 것인지를 탐문해 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한마디로 설화다. 과거에 어느 부총리도 이와 비슷한 예를 보여준 적이 있다. 취임하고 얼마안돼 는 얘기를 했다. 그 결과는 느닷없이 각종 물가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요금을 대폭 올린다고 하니 음식점이발소 목욕탕을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요금을 올려버린 탓이다. 기자들은 그때의 상황을 코스트푸쉬 임플레이션에 빗대 마우스푸쉬 인플레이션(말때문에 오른 물가)이라고 이름지었었다. 역시 당연한 얘기지만 이 말은 짚고 넘어아야 겠다. 말에는 할말과 안할 말이 있다. 꼭 해야할 말이라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같은 말도 해서는 안될 사람이 있다. 말 한마디에 경제전체가 휘청댈수 있는 고위관리라면 더더욱 말을 가릴 일이다. 최승욱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