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복조리
입력
수정
"복조리 사시오. 복조리요" 몇십년전만 하더라도 음력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 설날이 시작되면 어둠속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복조리를 파는 장수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각 가정에서는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동안에 소요되는 수량의 복조리를 사서 그 속에 엿이나 성냥 돈 등을 담아 방 한쪽 구석이나 미쳐 복조리를 사지 못한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사기도 했다. 그러나 복조리를 일찍 살수록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어서 남보다 먼저 사려는게 관습이어 왔다. 조리는 가늘게 질긴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쌀을 이는데 쓰는 기구다. 복조리는 한해의 복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여기에서 복조리를 사서 방이나 대청 한켠 벽에 걸어 놓고 하나씩 계속 사용하면 한해동안 내내 복이 들어오게 된다는 민간신앙이 싹텄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의 산촌이나 농촌에서는 설날에 복조리와 더불어 갈퀴를 사놓는 풍습이 있었다. 쌀을 이는 조리와 어떤 물건들을 긁어 모으는 갈퀴가 다같이 생활에 필요한 기구이면 서로 한해동안의 복을 일거나 그러어 들여 취하는 일을 담당한다는 민간신앙으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복조리의 원산지는 강원도의 원주, 충북의 보은, 충남의 서산, 전남의 담양 등지이나 그밖의 다른 곳들에서도 만들어 졌다. 이곳 사람들은 겨우내 부업으로 만든 복조리를 온 식구가 등에 걸머지고 전국 각지로 흩어져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그밖에도 설날에 복을 비는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세시풍속들이 많았다. 갑옷을 입은 장군이나 역귀와 마귀를 쫓는 신의 형상, 삼재를 세마리의 매를 그림으로 그려 붙였다. 이것들은 재액을 물리쳐 한해를 복되게 살려는 인간의 간절한 기복행위의 한 행태였다. 이러한 설날의 전통적 기복 세시풍속이 자취를 감춘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 기복행위들 가운데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 온 것은 복조리다. 그러나 오래 새해의 첫 출발을 알리는 복조리 장수의 외침소리를 듣지는 못하게 되었다. 허지만 복조리라도 집안에 걸어 난마와 같은 세태를 벗어나는 새해가 되어 달라고 빌어 보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