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파이팅! 라이벌) 농구선수 전희철-정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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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한국농구의 진수를 보여주마" 경기 시작 직전 전희철은 평소 습관처럼 잘 묶여진 농구화 끈을 다시 한번힘껏 죄며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국내 프로농구판을 외국 용병들의 독무대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순 없지" 팬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막 닻을 올린 프로농구호가 용병 타수들의 현란한조정으로 좌지우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젠 상대팀을 이기는 것 뿐 아니라 용병들에게 뒤지지 않는 것도 중요해졌다. 팬들은 용병들의 가세로 한결 세련되고 수준높은 플레이를 즐길 수 있어 열광하고 있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스피디해졌고 몸싸움 또한 한층 격렬해져 박진감이 절로 넘친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덩크슛이 나오면 기립박수를 보내던 때와는 다르다. 덩크슛은 너무나 흔한 장면이 돼버렸고 이제 팬들은 보다 화려한 플레이를원하고 있다. 관중들은 어느 선수가 토종이냐 용병이냐를 따지지 않는다. 수준높은 기량과 멋진 플레이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갈수록 높아져만 갈 뿐이다. "에어" 전희철(대구 동양 오리온스)과 "저승사자" 정재근(안양 SBS스타즈). 이들은 흑인들 특유의 탄력있는 플레이로 무장한 용병들 앞에서 "토종농구"의 자존심을 지킬 대들보로 부각되고 있는 주인공들. 지난달 모 스포츠신문이 조사한 "용병들이 뽑은 최고의 토종스타"로 선정되기도 한 전희철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농구의 간판이다. 연봉 1억2천만원. 기아의 허재와 함께 국내 최고수준이다. 연봉 뿐 아니라 기량면에서도 전희철은 국내 정상의 센터겸 파워포워드로서손색이 없다. 현란한 드리블과 포스트플레이어로는 보기 드물게 정확한 3점슛, 그리고 매끄러운 덩크슛까지. 깨끗한 경기 매너 또한 그의 트레이드마크. 지난 3월 한달동안 전희철은 국내선수로는 유일하게 득점 랭킹 10걸(9위)에들었다. 블록슛(7위) 리바운드(11위)에서도 국내 선수들 가운데 최고 랭킹을 기록하면서 용병들 틈에서 한국농구의 자존심을 지켰다. 턱수염을 기른 "저승사자" 정재근. 지난 18일 원주에서 열린 나래 블루버드와의 플레이오프 준결승 4차전에서그는 3점슛 다섯개를 포함, 올 시즌 최고득점인 43점을 올리며 저승사자의 부활을 알렸다. 오른쪽 어깨 부상을 무릅쓰고 보여준 그의 플레이 앞에 나래의 "불꽃용병"해리스와 윌리포드도 빛을 잃고 말았다. "뛰어난 개인기와 높은 득점력을 갖춘 올라운드 플레이어" 정재근에 대한 용병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팬들은 외국 용병들의 참여가 한국농구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경쟁 없이 발전은 없는 법. 전희철도 "용병들의 철저한 프로정신을 보면서나 뿐 아니라 동료들도 많이 배우고 있다"고 털어놨다. 용병들에 가린 국내 선수 보호를 위해 용병 출전인원을 1명으로 제한한 대만 프로농구의 전철을 우리는 과연 피할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우린 전희철과 정재근을 믿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