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인터뷰] 배무기 <초대 중앙노동위 위원장>에게 듣는다

노동관계법이 개정되면서 중앙노동위원회의 위상이 크게 격상되고 조직도대폭 확대됐다. 중로위 위원장의 격이 1급(차관보급)에서 장관으로 두 단계나 껑충 뛰었고중로위의 독립성과 전문성도 강화됐다. 그래서인지 많은 노사관계자들은 중로위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대에서 노동경제학을 강의하다 공직자의 길을 택한 배무기 초대 중로위위원장. 그는 "앞으로 노사분쟁에 있어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공정한 심판을내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교수 재직때도 생산적 노사관계 정립에 앞장섰던 배위원장은 지난해에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상임위원을 맡아 새 노동법탄생에 산파역을 하기도 했다. 배위원장을 만나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 대담 = 윤기설 사회1부차장 ]====================================================================== -노동법 개정후 노동위원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큽니다. 새 노동법에 의한 중노위 초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소감은 어떻습니까. "노동위원회법이 대폭 바뀌면서 노동위원회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강화된 중노위의 첫 위원장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노사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나서는 것이지요. 적절하게 법을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위원회를 신뢰받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노동위원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노동위원회를 잘 알지 못합니다.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한마디로 노동문제 재판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노사가 대화로 해결하지 못한 노사분쟁을 공정한 입장에서 조정하고 심판하는 곳이지요. 시장경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있습니다. 노사관계에 있어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노동위원회입니다. 노동위원회가 신뢰받는 기구로 거듭난다면 노사관계 안정과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노동계든 경영계든 노동위원회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많았지요. 노동위원회에 대한 노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사가 심판을 청구하면 13개 지방노동위원회(지로위)에서 초심을 담당하고 중노위는 재심을 담당하는데 노측이나 사측이 재심판정에 불복할 경우 고등법원에 중노위 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지난해 중노위의 행정소송 패소율은 20%선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비율을 더욱 낮추겠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심사관은 조서를 만드는 단계부터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공익위원들은 보다 신중하게 판정을 내려야 하겠지요. 최근 법원의 판결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경영의 어려움을 좀더 배려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위원회가 근로자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쪽으로 판정을 내리면 브레이크가 걸리게 됩니다. 노동문제를 공정하게 심판함으로써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노동위원회에 대한 불신이 쉽게 사라질까요. "부당노동행위 불법쟁의행위를 줄이는 일도 노동위원회의 업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문제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노사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지방순회교육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전형적인 노사분쟁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어떻게 조정하고 심판했는지 알려 노사가 특정 행위에 대한 잘잘못을 깨닫게 함으로써 노사분쟁을 예방할 것입니다" -한때 노동법원을 설립하자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습니다. 노동법원과 노동위원회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릅니까. "노동법원에서는 법관만이 심판이나 조정에 참여합니다. 반면 노동위원회에서는 법관이나 변호사와 같은 법률전문가 뿐만 아니라 법이나 경제 경영 사회학을 전공한 교수, 언론계 인사, 사회 덕망가 등도 조정에 참여할 수 있지요. 노사문제는 법관보다는 노동문제에 정통한 사람들이 노사 양측의 사정을 충분히 감안해 법원보다 신속하게 문제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노동법원을 설립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노동위원회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위원회법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개정법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노동위원회법을 개정한 이유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노동위원회의 독립성과 공정성 전문성을 높인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동위원회는 여전히 노동부에 소속돼 있습니다. 그러나 중노위 위원장의 격을 높이고 인사 예산 교육훈련에 관해서는 중노위 위원장이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토록 했습니다. 가령 지노위 위원들을 예전에는 노동부장관이 임명했지만 이제는 중노위 위원장이 임명합니다. 그만큼 독립성이 커진 것이지요. 노동위원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이번에 조정과 심판과를 신설했습니다. 조정업무와 심판업무를 구분하고 공익위원도 심판담당과 판정담당을 구분하여 뽑도록 했습니다. 심판담당 공익위원은 주로 법률적 소양이 있는 사람을, 조정담당 공익위원은 조정에 능한 사람을 뽑아 전문성을 살리도록 했어요" -노동위가 노사 당사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조정-심판에 참여하는 공익위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동위원회의 공정성은 공익위원에서 판가름납니다. 심판사건은 대부분 공익위원 3명이 담당하는데 공익위원이 공정하지 못하면 신뢰받지 못합니다. 새 노동위원회법은 노사가 투표로 공익위원을 뽑도록 함으로써 극단적인 인사는 배제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건과 관계된 위원을 제재하는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공익위원 임기를 보장토록 한 것도 공정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동쟁의에 앞서 반드시 조정을 거치도록 조정전치주의를 도입함에 따라 노동위원회가 본격활동에 들어가면 조정을 많이 하게 되겠군요. "노동위원회 판정 가운데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것이 가장 많습니다. 노동위원회가 계속 엄정한 판정을 내리면 판례가 쌓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사한 사건이 생길 경우 노동위원회에 제소하면 이기거나 진다는 사실을 알게 돼 구태여 노동위원회를 찾지 않고도 노사 자율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겠지요. 결과적으로 노사관계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노동위원회 조직이 확대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예전에는 중노위의 노(근로자위원) 사(사용자위원) 공익위원이 30명이었으나 이번에 60명으로 대폭 늘었습니다. 지노위까지 포함하면 노-사-공익위원은 4백20명에서 7백20명으로 늘어납니다. 중노위에는 심판과 조정과 서무과가 신설되고 부서장 직급도 소폭 격상됐습니다. 규모가 큰 지노위에도 이런 부서들이 신설됐지요. 노동위원수는 많이 늘었지만 지원부서인 사무국 인원은 그다지 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노동위원회가 제대로 일을 하려고 해도 노동위원이 부족해 어려웠습니다. 노동위원회에서는 한해에 4천건의 분쟁을 처리합니다. 하루 10건이 넘는 분쟁을 처리하다 보니 부실한 면이 있었겠지요. 인원이 확충된 만큼 노동위원회도 달라질 것입니다. 앞으로는 분쟁을 단 한차례 심의로 끝내기보다 두세차례 신중하게 다룰 생각입니다" -이번에 중노위 위원장과 서울지로위 위원장에 교수 출신이 임명됐습니다. 앞으로도 학계 인사들이 노동위원회에 많이 참여하게 됩니까. "앞으로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구성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인원이 2배 가까이 늘어난데다 공익위원 자격요건이 완화됐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자격요건이 까다로워 중견교수나 전문가들을 활용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부교수나 조교수급이라도 능력있는 사람이면 공익위원이 될 수 있게 됐습니다. 교수 뿐만 아니라 변호사 언론인 등도 많이 충원될 것입니다" -노동위원회법을 포함, 노동관계법이 많이 바뀜에 따라 노동운동 양상이나 노사관계가 많이 달라지게 됐습니다. 올 노사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올해는 경제가 워낙 어려운 국면에 빠져 있기 때문에 예년에 비해 분규가 많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노조가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인정하고 임금동결을 선언하거나 회사측에 맡기기로 결정한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개정노동법에 명시된 사항을 단체협약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노사간에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금협약 유효기간을 놓고 사용자측이 2년으로 연장하자고 요구하고 이에 대해 노조가 1년을 고수하겠다고 맞서면 다소의 갈등은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노사가 협상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대체로 3년에 한번씩 임금협상을 합니다" -노사간 자율교섭 기반 구축이 노동법 개정의 취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정부의 개입을 줄이겠다는 얘기지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본적으로 행정당국이나 입법부는 노사관계의 기본 룰(규칙)을 만들어주는데 그쳐야 합니다. 나머지는 노사자율에 맡겨야 하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정부가 빈번하게 노사문제에 개입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가 직접 나설 경우 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저항만 초래하게 됩니다. 노사자율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엔 노동위원회의 의견을 듣도록 하면 됩니다. 정부개입 반발불러 가령 단체협약의 해석이나 불이행과 같은 문제로 노사가 의견이 엇갈리면 노동위원회에 가져와서 견해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노동위원회의 견해는 중재재정과 똑같은 효력을 갖습니다. 판결이나 다름없지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법이 바뀜에 따라 새 노사문화를 정립하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노개위 전임 상임위원으로서 노사 양측에 어떤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까. "노동위원회는 노사관계 안정,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근로손실일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일에 직접 관계하는 기구입니다. 노사관계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립과 투쟁의 노사관계는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경영자는 경영정보를 근로자들에게 공개하고 근로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등 이른바 "열린 경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근로자들이 애사심과 주인의식을 갖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데 적극 나서게 됩니다. 자동화나 구조조정 기구개편을 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해고도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경영자는 고용안정도 함께 배려해야 합니다. 노동계가 대립과 투쟁위주의 노조이념을 고수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참여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건전한 노동운동이 가능하고 노조 조직률도 오르게 됩니다" [ 약력 ] 경남 창원출생(39년) 서울대 상대 졸업(62년) 미국 뉴욕시립대 경제학박사(75년) 서울대교수(70~97년4월) 한국노동경제학회장 한국노동연구원장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상임위원 주요저서 : ''노동경제학'' ''한국노사관계의 개혁''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