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설렁탕과 선농제 .. 원철희 <농협중앙회장>

가난했던 시절 미국에 유학하던 많은 인사들이 돈을 별로 안들이고 몸보신하는 방법이 있었다. 미국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소뼉다귀를 구해서 푹 고아 밥을 말아 먹었더니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아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국민이 설렁탕을 좋아하는 것은 6.25 이전이나, 생활 형편이 많이 나아진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유명한 설렁탕집은 지금도 언제나 손님으로 만원이다. 이 설렁탕의 유래는 조선시대 임금들이 백성에게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 풍년기원의 제사를 지내고 그 제단앞에 밭을 몸소 갈아 시범을 보였던 선농제때 행사에 참여한 농민들에게 내린 뚝배기 국밥 선농탕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선농제는 임금이 직접 주관했던 권농행사로 그 기원은 신라 박혁거세 17년(BC41)에 왕과 왕비가 6부를 순행하며 농사를 권장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선농제를 지내던 곳이 선농단으로 현재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선농제는 조선조 마지막 황제인 순종때까지 행해졌으나 일제 치하에서 중단되었다. 그후 뜻있는 인사들에 의해 다시 명맥이 유지되어 오다가 92년부터 동대문구청이 주축이 되어 선농제향을 봉행하고,그 날을 지역문화축제로 발전시켜오고 있다. 농업의 GNP 비중이 낮아짐과 함께 이 때를 기념했던 권농일도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농업이 만사의 으뜸이던 때와는 여건이 다를지라도 예나 지금이나 농업은 여전히 우리에게 먹거리를 공급해주는 생명 산업이다. 근로의 소중함,자연의 철학,식량의 중요성 등 값진 전통문화의 정신적 유산은 설렁탕이 살아 있는 것처럼 결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