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빅뱅' 정부안 확정] 중앙은행/감독체계 개편논의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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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제도 및 감독체계 개편에 관한 논의는 80년대이후 끈질기에 이어져왔으며 그동안 3차례 개편을 추진했으나 관련기관간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중앙은행 독립문제는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대통령후보자들의선거공약 단골메뉴로 등장해왔으나 번번이 공약이 되고 말았다. 김대통령은 지난 92년 선거공약을 통해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여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중앙은행제도 및 감독체계 개편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5공화국 초기인 지난 82년. 당시 재무부와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보장하되 한은의 감독기능을 정부로 이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도개편안을 심도있게 협의했다. 강경식 당시 재무부장관의 주도하에 재무부와 한은 실무자들간에 진행된 개편논의는 양측의 합의직전에 한은에서 은행감독권을 분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함에 따라 무산됐다. 중앙은행 독립문제는 다시 지난 87년 6.29 선언을 계기로 정치.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경제의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아지면서 불거져나왔다. 87년11월 야당은 한은법 개정을 위한 단일안을 마련했으며 이 합의안은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이 재무부장관 대신 한은총재를 겸임하고 재무부차관을 금통위 당연직 위원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정부.여당도 당정협의를 통해 금통위 의장이 한은총재를 겸임하고 재무부차관을 금통위 당연직 위원에 참여시키되 은행감독원을 한은으로부터 분리, 재무부산하에 두도록 했다. 재무부는 89년8월 금통위 의장을 재무부장관에서 한은총재로 변경하는 대신 재무부장관은 통화신용정책 사전협의권, 은행감독업무에 대한 일반지시권, 한은 경비예산 승인권, 정관변경 승인권 등을 갖도록 하는 독자적인법안을 만들었었다. 그러나 한은은 재무부가 제시한 이같은 중앙은행 제도개편안이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훼손한다면서 강력 반발했으며 결국 금통위가 한은법 개정은 장기적으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힘에 따라 중앙은행 제도개편 논의는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중앙은행제도 개편은 다시 지난 95년2월 당시 홍재형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에 의해 추진됐다. 전격적으로 발표된 개편안은 금통위 의장이 한은총재를 겸임하고 금통위는 임기 3년인 9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는 것이 골자였다. 또 한은의 은행감독기능을 분리하고 은행, 증권, 보험감독원을 금융감독원으로 통합, 1.2금융권에 대한 감독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이와함께 금융감독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감독원 내에 위원장(원장)을 포함한 20명 이내의 금융감독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해 7월1일부터 시행키로 했던 이같은 개편방안은 여당에서 지방자치선거 등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데다 한은 등 이해관계기관들의 반발에 부닥쳐 국회에 법안제출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또 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정부는 이제 80년대이후 4번째로 중앙은행 제도 및 감독체계 개편을 추진하게 됐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대통령이 직접 직속 자문기구인 금융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정부는 이 위원회가 건의한 내용을 토대로 개편방안을 작성했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도 무게가 실려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보사태이후 금융감독체계의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금융자율화와 금융의 겸업화 추세에 부응해 중앙은행제도 및 감독체계의 개편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한은노조가 은감원의 분리방침에 강력히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은행과 은행.보험.증권감독원이 모두 심하게 반발하고있는데다 국회에서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자칫하면 4수도 물거품으로끝날 공산도 없지 않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