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보고서] '경영위기와 조직활성화'

불황의 장기화, 경쟁력 상실 등으로 국내 기업들은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양적 성장에만 치중한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해 일부 대기업들이 부도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은 최근 "경영위기와 조직활성화"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사업다각화에 원인이 있다기 보다는 조직의 경직성과 이로 인한 환경적응력의 약화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조직 활성화를 통해 경직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으면 최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 국내 유수 대기업들의 위기와 도산은 국내 금융기관 및 국가신용등급의 하향조정 등 국내외에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진로 기아 등의 경우 표면상으로는 더이상 초과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성숙기 시장에서 탈출하기 위해 관련 혹은 비관련 신사업에의 진출을 적극 시도했고 정착되는 와중에 결손 누적과 금융비용 과다로 도산위기에 직면한 경우이다. 이를 방만한 경영이라 말하는 전문가도 있으나 비관련 다각화로 성장 발전하고 있는 GE나 ABB의 경우를 보면 일률적으로 단죄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경영위기는 과거 성공을 거둔 경영방식에 대한 과신 및 조직의 경직성으로 인한 환경 적응력의 약화에 기인한다. 즉 과거의 경영방식을 과신하는 풍토가 고착화될 경우 조직의 경직성을 불러일으키고 종국에 가서는 시장.고객과 유리되어 위기에 봉착하는 것이다. 일례로 DEC는 최고의 제품 품질과 견고성을 무기로 미니 컴퓨터시장에 뛰어들어 VAX시리즈라는 신화적인 히트상품을 창출해 엄청난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연구개발과 생산만을 중시하고 마케팅 재무 등 타부문을 경시하는 등 기술지상주의와 관료주의에 빠져 추락의 길을 걸었다. 경직된 조직은 경영의 단절성,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경직성, 비즈니스 시스템의 단절, 경영의 일관성 미흡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요인은 조직을 시장이나 고객과 괴리시키고 조직의 일체감을 저하시킨다. 또 정보 아이디어 자금 기술 등 자원의 원활한 흐름을 왜곡시키고 조직 구성원의 신뢰 및 조직 학습능력을 감퇴시킨다. 경영의 단절이란 비즈니스 사이클인 계획 실행 통제가 각각 분리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즉 계획된 의사결정 사항이 체계적으로 실행되지 않거나 실행되었다 하더라도 사후평가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이것이 차기의 경영계획에 반영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될 경우 조직은 시장변화와 현재의 조직역량 수준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없다. 1회성으로 끝나는 사업계획과 면밀한 팔로업(Follow Up)이 없는 조직에서 조직의 일체감을 형성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불어 조직역량의 확대 재생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수직적인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본질은 최고경영자가 일선 현장 및 고객의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고 조직 구성원과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를 명확히 함으로써 조직 내부의 일체감을 고양하고 현장 중심의 고객밀착경영을 하는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계층의 축소는 비용절감차원이 아니라 시장에 신속하게 접근하고 리더십의 질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경직된 조직에서는 의사결정의 통로가 경직되어 있다. 중간관리자 스태프 및 일부 임원은 현장의 생생한 정보를 단순 집계해 다시 요약 재작성함으로써 상식적인 수준의 정보로 전락시킨다. 이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최고경영자가 최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최고경영자의 철학과 의지는 일선현장 및 영업사원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고 갖가지 해석으로 전달되기 쉽다. 결국 조직의 허리는 자료수집 및 여과장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조직의 일체감을 기대하기 어렵고 고객 및 시장, 조직은 상호 유리되기 쉽다. 또 최고경영자가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도 별로 없게 된다. 수평적 비즈니스 시스템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증대시키는데에 그 기능의 핵심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상품기획 연구개발(R&D) 설계 생산 영업 애프터서비스(AS)의전 과정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명확히 하고 이 가치의 양과 질을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최고의 품질을 원하면 제품출하 초기에 클레임을 포함한 불량을 최소화해야 하고 발생한 불량은 동일한 원인으로 재발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질 좋은 정보.문제해결 아이디어.기술 등이 기능부서간에 원활하게 피드백되어야 하고 부서 이기주의와 같은 내부지향적인 의식이 아니라 고객지향적인 의식으로 일체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직된 조직에서는 이러한 피드백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비즈니스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위기능 부서는 상호 떨어진 외딴 섬과 같이 행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조직이 창출하는 가치는 확대재생산의 과정에 들어가지 않고 단순재생산의 차원으로 국한된다. 따라서 조직은 시장.고객과 괴리되고 고객의 불만은 점점 증가하게 된다. 특히 경쟁이 심화될 경우 고객은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거나 더 질 높은 가치를 요구하는데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게 된다. 경영의 일관성이란 근본적인 산업의 특성이 바뀌지 않는 한 정책과 방침을 변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경영의 일관성은 조직 구성원에게 신뢰와 일체감을 형성하게 해주는데 가장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조직 구성원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반복함으로써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고 의식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영의 일관성이 보장되면 수직적 수평적인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내부여건이 확보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경직된 조직에서는 경영의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최고경영자나 상위 관리자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대해 자신감을 상실하기 쉽다. 수직.수평적 조직운영 메커니즘상에서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일관성있게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정책과 방침은 실질적으로 좌절되고 다시 새로운 정책과 방침을 세우지만 이는 조직 구성원에게 "말을 자주 바꾼다"는 인식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직된 조직을 활성화시키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첫째 사업의 근본가치에 바탕을 둔 합당한 경영원칙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만약 기존에 설정된 경영원칙이 있다면 이를 전면 개편해서는 안되고 부분수정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설정된 경영원칙은 근본적인 산업의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한 수정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이렇게 설정 혹은 수정 보완된 경영원칙을 조직운영의 프로세스에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조직의 군살을 제거해야 한다. 조직의 경직된 부분에 대한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조직을 소프트한 운영방식으로 바꾸거나 조직운영의 묘를 살린다 하더라도 조직의 군살이 많으면 실제 조직운영이 오히려 더 복잡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조직의 군살이란 단순계수의 집계 및 통제를 위한 통제에 집착하는 부문이다. 특히 수직적 의사결정 통로에서 이중통제가 집행되고 있다면 이중 한 계층을 축소해 생산 및 영업현장의 문제해결, 지원.촉진역할을 수행하도록 재배치시켜야 한다. 셋째 경직된 부분을 재정립하고 나면 조직의 운영방식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때의 검토포인트는 성과주의 인재육성 등이다. 마지막으로 최고경영자는 원칙중시 현장중시의 경영을 통해 일선의 조직구성원을 직접 만나 지원 격려하는 활동을 강화하고 인재육성을 위한 활동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