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민도가 국가를 좌우한다..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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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바로 세우는 원리는 집을 짓는 원리와 똑같다. 튼튼한 집을 지으려면 하나하나의 벽돌이 튼튼해야 하고 모든 재목이 견고해야 한다. 약한 벽돌과 썩은 재목으로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없다. 국가의 건설도 마찬가지다. 게으르고 거짓되고 무책임한 국민들이 모여서 건전하고 부강한 나라를 도저히 건설할 수 없다. 부지런하고, 신용을 지키고, 책임감이 강한 국민들이 모여야만 비로소 튼튼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자유론을 쓴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인 J S 밀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긴 눈으로 보면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가치에 의하여 결정된다. 왜소한 인물을 가지고서는 위대한 사업을 절대로 성취할 수 없다" 민도가 국력을 결정한다. 민도가 낮으면 부패하고 허약한 국가밖에 못만든다. 민도가 높으면 만세반석과 같은 위대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민도를 높이는 것이다. 어떻게 높이느냐. 국민 각자가 주체적 자각과 도덕적 훈련으로 자기 스스로의 인격수준을 높이는 도리밖에 없다. 대통령이 나의 인격수준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우리의 도덕수준을 향상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남이 해줄 수 있는 일과 남이 해줄 수 없는 일이 있다. 국민의 인격수준 향상은 국민 각자의 의무요, 책임이다. 한 나라의 민도는 세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는 도덕적 수준이요, 둘째는 경제적 수준이요, 셋째는 교육적 수준이다. 이 세가지 요소가 모두 합하여 한 나라 국민의 민도를 결정한다. 이 세가지 요소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적 수준이다. 교육이 사회발전의 근본이 되어 국민의 도덕을 향상시키고 경제력을 강화시킨다. 현대는 양의 시대가 아니고, 질의 시대다. 물은 수질이 좋아야 하고, 땅은 토질이 좋아야 하고, 상품은 품질이 좋아야 한다. 민도가 높고 국민의 질이 좋아야만 부패가 없고, 부정이 없는 건실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국민의 질을 높이고 민도를 향상시키려면 백성을 새롭게 만드는 신민운동이일어나야 한다. 모든 국민이 새로워져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모두 새 사람, 새 마음, 새 양심, 새 도덕으로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과거에 우리는 4.19 혁명도 해보았고, 5.16 쿠데타도 경험해보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정부패가 심하고 사치와 낭비가 사라지지 않고, 혼미와 무질서와 타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왜냐. 가장 중요한 정신혁명 인격혁명 양심혁명 도덕혁명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의 개혁, 체제의 변혁 만으로는 절대로 새나라 새사회를 만들 수 없다. 국민의 인격이 달라지고, 행동이 바뀌고, 정신이 변화해야 한다. 외적인 혁명도 중요하지만 내적 혁명이 더 중요하다. 새 사람, 새 국민이 되어야만 새 나라, 새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인간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첫째는 일하기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유민들이 대오각성하여 일하기 좋아하고 땀을 사랑하는 근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둘째는 나의 할 일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자각 무책임 무성실속에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우민들이 나의 의무와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현민들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끝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를 모르고 불로소득만 탐내고, 허위와 태만속에서 무사안일로 허송세월하는 천민의 생활태도를 버리고 악과 불의를 미워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생활의 근본신조로 삼는 착하고 용감한 의민들이 새로 탄생해야만 우리 사회는 바르고 깨끗한 나라가 될 수 있다. 민-관-군의 질이 모두 새로워져야 한다. 사치의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검소의 새 옷으로 갈아입자. 거짓의 헌 옷을 벗어버리고 진실의 새 옷으로 갈아입자. 나태의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근면의 새 옷으로 갈아입자. 교만의 추한 옷을 벗어버리고 겸손의 새 옷으로 갈아입자. 나라의 헌법을 바꾸고 사회의 체제를 변혁한다고 새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국민이 건실한 근민과, 총명한 현민과, 당당한 의민으로 바뀔 때 비로소 새 나라 새 사회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도덕혁명,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요, 나아갈 목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