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1일자) 궤도 너무 벗어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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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의 무조건 필승이 아무리 정치인의 유일한 선망이라고 한들 요즘 대선정국처럼 정도를 멀리 벗어난다면 국민의 정치불신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정계와 유권자 사이에 간격이 이처럼 벌어져만 간다면 무엇보다 투표율이 크게 추락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결국 이 땅의 민주주의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멍이 들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이 앞선다. 후보 아들의 병역미필이 오랜 헐뜯기 호재로 회자되더니 느닷없이 색깔논쟁 사상논쟁으로 번져 뜨겁게 달아 오른다. 병역문제가 분명 후보자격과 유관하고, 오익제씨의 비중으로 보아 그의 월북이 또한 예사로운 일은 분명 아니다. 모두가 마땅히 자초지종을 따져 잘잘못을 가려야 할 중대 문제들이다. 그러나 문제가 꼬이는 시발점은 대소사 허물만 잡히면 예외없이 대선의 정쟁도구로 악용하려드는 여야 제정당의 당리당략이다. 따지고 보면 정쟁거리도 아니다. 우선 병역건만 해도 그런 의혹이 불거졌으면 적법성 여부를 관할관서가 책임지고 객관적으로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본인의 의사 또는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 이상 다른 순리가 있을수 없다. 기존 정부기관의 기능만으로도 이 문제의 진실발견에 힘이 부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오씨 월북을 둘러싼 정가의 움직임에 이르러선 엄연한 국가보안법 저촉사건을 어째서 정치권이 가로맡아 왈가왈부하는지 이해하기 조차 힘들다. 오씨의 경력으로 보아 두고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향수만으로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이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용납될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정당간에,또는 정부기관과의 사이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행태야말로 온당치 않다. 더구나 마치 깔아놓은 덫에 걸려들었다는 듯이 예의 색깔론 좌경론을 들추는 소행이야 말로 어떤 정당,어느 후보진영을 불문,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수준이하의 고질적 타성이라 본다. 오씨의 수년간에 걸친 언동이 일부의 지적대로 수상했었다면 종단이나 정당과는 별도로 마땅히 대공.치안 당국에서 점검했어야 백번 옳다. 우리가 주문코자 하는 것도 앞으로 오씨 월북의 전후사정 파악과 법적 대응에 있어 당국은 정치권에 대해 여하한 고려도 차단하고 어디까지나 현행법에 따라 철저를 기함으로써 그렇잖아도 이산가족간에 우회접촉의 기회가 많아지는 현실앞에 어떤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개입여지도 이산가족의 접촉에 길을 터주는 등의 미래지향적 입법활동에서 찾을수 있다고 본다. 한국정치가 고깃덩이를 사이에 두고 죽을둥 살둥 으르렁대는 맹수떼와 다름없이 오로지 권력획득 하나를 위해 모든 가치를 다 걷어찬다면 차디찬 국민의 냉대만이 전리품으로 돌아온다는 인과응보를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다지도 모든 정당, 모든 후보, 모든 정객들이 국민에게 실망안기기 경쟁에 여념이 없다면 한국정치의 수준향상은 백년하청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