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설 연환계 .. 정만호 <경제부장>

경제상황이 공황국면으로 치달으면서 강경식 부총리가 자신의 소신과 처지를빗대 말한 비유가 세삼스레 떠오른다. 유비와 조조의 군사가 맞붙어 대세를 갈랐던 적벽전에서의 연환계 장면이다. 자신의 소신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자 평소 담고 있던 철학의 일단을 내비친것일 게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인 것이 강부총리의 시선이 지금우리경제가 처한 상황과는 영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처지와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기업정책의 일단을 피력하면서 "연환계를 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재벌은화공으로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조조 진영의 배들이 군함을 쇠사슬로 연결해 유비의 공격에 대비하듯 국내의대기업그룹이 상호출자와 지급보증을 통해 얼키설키 얽혀 건드리질 못하게하고 있는 만큼 일격에 가격을 해야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이 효과를 본다는 비유였다. 물론 재벌을 화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섬뜩한 선언은 아니었을게다. 단지 대기업그룹의 형태가 그렇기 때문에 여건이 좋을 때 관련제도를 한꺼번에 고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잘못되도 돕지 않겠다는 의중도 담겨있는 듯하다. 강부총리의 속뜻은 짐작하겠지만 나는 그가 적벽전을 거론하더라는 말을 전해듣는 순간에 전혀 다른 장면을 떠올렸다. 화공을 당한 조조의 배가 거대한 불길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장엄한 장면이아니다. 그당시 가장 필요했던 동남풍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갈량이 산꼭데기에 올라가 짐짓 제사를 지내는 광경이다. 아무리 옛날 일이라 한들 제사를 지낸다고 없는 바람이 생기겠으며, 천하의 제갈량이라고 한겨울에 동남풍을 만들수 있을까만은 그는 향을 피우고 주문을외며 바람을 불러댔다. 결국 동남대풍이 불었고 화공은 성공했다. 천기를 잘아는 전문가들에게 물어 곧 바람의 방향이 바뀌리라는 것을 제갈량은 알고 있었다. 설사 그렇게 안되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요즘도 일기예보가 틀리는 판에 그당시에야 하늘의 일을 못맞추었다고 시비가 될 턱은 없다. 응당 "현명한 제갈량으로썬 바람을 부르고 볼 일이었다. 만일 동남풍이 오면 주술로 바람을 만드는 신통한 군사를 두고 있는 유비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것이고, 바람이 바뀌지 않아도 애를 쓴다는 모습은 보여줄수 있으니 고민할 까닭이 없었다. 이 장면의 서울을 보자. 난국에 처한 경제를 이끌고 있는 우리의 경제부총리는 어땠는가.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멀쩡한 기업까지 부도에 휘말리는 데도 "알아서하라"고발을 뺐다. 외국의 금융기관이 돈줄을 끊고 있는데도 "금융기관도 경영부실의 책임을 져야 하며 아무리 어려워지더라도 특융은 안된다"고 우겼다. "기업이건 금융기관이건 국제기준에 어긋나는 지원은 안된다"고 버텼다. 만일 진작부터 이랬으면 어찌됐을까. 금융기관도 자체적으로 경영쇄신 노력을 한다면 정부가 돕겠다, 기업부도가 더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은행과 적극 협의하겠다, 국제기준을 어기지 않는범위안에서 지원책을 찾아보겠다, 외자유입을 활성화시키겠다... 지금와서 보니까 이랬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정부는 한참뒤에 상황이 완전이 망가지고 나서는 이런 자세로 돌아섰다. 단순히 돌아선 정도가 아니다. 앞으론 부도를 내지 말라며 특정기업 처리문제를 논의하는 채권단모임에까지나가 지원을 독촉했다. 환율이 폭등하자 일반인들이 단순히 외환을 보유하려는 경우엔 환전을 해주지 못하도록 했다. 이 정도면 국제기준이 아니라 60년대 한국근대화 초기의 수준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모를 땐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듣는 자세, 그리고 안되더라도 할수 있는데 까지 하겠다는 각오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지도자가필요한 시점이다. 연환계의 화공장면을 즐길게 아니라 성공을 이끌어내는 "현명한" 장수의 모습을 먼저 본받을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