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279) 제9부 : 안나푸르나는 너무 높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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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신은 상냥하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당신은 이제 인생에서 승리한 사람이니까 다른 모든 것은 용서해요" 그렇게 말하자 그가 그녀를 껴안으면서 뜨거운 포옹을 한다. "나를 믿어줘.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어. 오직 당신 하나가 나의 백마야.믿어주는 거지?" 그는 이번에는 뜨겁게 키스를 퍼붓는다. 운전을 하고 있던 영신은 그의 애무에 운전이 잘 안 된다. "내 사랑은 오직 당신 뿐이야. 나는 이 기분으로 장인 어른에게 가고 싶어.프로를 딴 이 감명으로 상패를 안겨드리면서 나에게 영신을 주십시오 하고 말하고 싶어. 안 될까? 꼭 오늘이어야 될 것 같아. 김회장님은 지금 어디 계셔?" "몰라요. 오늘만은 프로시합 때문에 같이 못 있는다구 말씀드렸어요.그래서 어디 계신지 모르겠어요" "내 시합을 지켜보고 계셨을까?" "글쎄요. 골프는 이제 싫증을 내시거든요. 요새는 열심히 볼링을 치세요. 스트라이크가 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고 아주 열중하고 계세요" "그러면 나도 볼링을 쳐야겠다. 골프보다 쉬울 것 같아. 안 그래? 당신도 쳐요?" "그럼요. 나는 요새 아버지의 다리이고 팔이니까" "됐어요. 그러면 나도 이제는 볼링을 칠 거야" 그는 어린아이같이 뽐내며 신바람이 났다. 김치수 회장이 자기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영신은 갑자기 그가 가엾어진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결혼을 두번이나 한 여자지만 지영웅과는 신분이 다르다. 그리고 그 신분은 돈을 중심으로 해서 생겨난 로열하우스 라는 신분상승으로 이루어진 높은 성이다. 그 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지영웅의 신분은 너무도 약하다. 골퍼라는 신분으로는 너무도 넘기 힘든 성이 자본주의사회가 만들어 놓은 재벌들의 혼맥이며 로열하우스의 체면이라는 칼날 같은 계단이다. 발이 베일 수도 있고 상처를 크게 입을 수도 있는 그 계단은 너무 높고 거기다 나이 차가 너무 커서 김치수는 자기 딸이 언젠가 큰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등식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지영웅이 12년후에 40세가 되었을때 영신은 61세가 된다. 김치수의 계산 속에는 있을 수 없는 결혼이다. 요즘 사람들은 내일은 생각 안 하고 결혼을 한다. 그러나 김치수 생각에 그것은 자살하는 것과 같다. 40 갓 넘은 남자가 60이 넘은 여자와 무슨 수로 살겠는가? 그는 불가능하다고 철퇴를 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인습이며 상식이다. 그러나 단순한 지영웅은 그런 복잡한 생각은 안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 뿐이다. 영신은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고통스러운 말을 이 신바람 나는 시간을 이용해서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40이 넘었을 때 나는 60이 넘어요. 상상해봤어요? 당신은 이제 성공했고 내가 필요로 한 시기는 지났어요. 잘 생각해봐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