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9일자) 뛰는 물가, 절약의 지혜를

기름값 대폭 인상을 앞두고 지난 27일밤 전국의 주유소에서 빚어진 북새통은 환율급등의 충격과 부작용이 마침내 일반 서민생활에도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음을 실감케 한다. 휘발유를 비롯한 주요 석유류제품가격이 한꺼번에 최고 22%까지 올랐지만 연말까지 환율이 달러당 1천원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유가의 추가인상이 불가피해져 휘발유의 경우 l당 1천원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하니 "IMF경제시대"의 춥고 어두운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이와 함께 산업계 전반에도 유가인상의 후유증이 확산, 원가상승에 따른 공산품 등 기초생필품의 가격인상과 공공요금 인상 또한 꼬리를 물 것으로 우려된다. 대선정국의 행정공백을 틈타 벌써부터 목욕료 음식료 등의 서비스요금까지 들먹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침체되면 물가가 하락하게 마련이지만 우리의 경우 환율상승으로 원자재의 수입가격이 상승하고, 그동안 기업도산을 막기 위해 풀린 돈이 많은데다 임금의 하방경직성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물가는 뚜렷한 상승요인이 있는 이상 무조건 억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결국 문제해결의 열쇠는 소비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분수에 맞지 않는 과소비의 표본이라고나 해야 할 에너지분야에서 소비행태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에너지의 수입의존도가 97%에 달하는 우리로서는 "에너지=달러"라는 인식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번 환율파동은 에너지부문에서 볼때 "제3의 석유파동"이다. 올들어 9월말까지 에너지 수입액은 1백9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나 늘어났다. 연도별 에너지 소비증가율도 어느 나라보다 높다. 에너지소비를 단 5%만 줄여도 15억달러의 외화를 절약할수 있건만 누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저에너지가격 시대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또 망국적인 사치병을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서는 국가경제를바로 세우기 어렵다. 외국에 달러를 구걸해야 하는 형편에서도 고급화장품 초대형냉장고 스키용품 귀금속제품 등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은 여전하다. 이들 사치품의 수입증가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과는 무관한 소비계층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우리 형편에 세계 최대의 모피소비국이라니 이러고도 나라경제가 온전하길 바란단 말인가.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번 경제위기는 우리의 불건전한 소비행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수도 있다고 본다. 발등의 불이 된 물가상승도 궁극적으로는 소비절약에 의해서만 억제될수 있다. 수요공급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이 혹독한 시련의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는 소비자 모두 절약과 절제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