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땅끝 논쟁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서쪽 해안에는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라는 관광명소가 있다. 유라시아 전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는 곶이다. 관광명소라지만 대서양에 직면한 1백40m의 절벽위인 그곳에는 시인 키봉에스가 "이곳에서 육지는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구나"라고 읊었다는 시비와 등대가 하나 서 있을뿐 황량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관광객들이 이곳을 꼭 찾는 이유는 돈만 내면 유럽 서쪽끝에 왔다갔다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수입을 올리는 탁월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반도의 육지가 끝나는 최남단은 북위 34도17분38초1에 위치한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사자봉이다. 마을이름은 본래 갈두리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마을은 토말, 곧 "땅끝"이라고 불려져 오고 있다. 사자산 정상에는 "겨레여 여기서 저 대자연을 굽어보며 조국의 무궁을 기원하라"는 비문이 적힌 토말비와 높이 10m의 전망대도 서 있다.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맑은 날이면 아슴프레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는 이곳은 인근에 백사청송으로 유명한 송호해수욕장과 두륜산 대흥사가 있고 윤선도의 유배지였던 보길도로 가는배편이 닿아 연중 70여만명이나되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다. 육지의 끝이라는 명성과 천혜의 풍광이 가져다준 행운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 해남군과 완도군이 "땅끝 "이라는 명칭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있다고 한다. 완도대교로 섬이 육속돼 이제는 해남군의 토말이 더 이상 "땅끝"이 될 수 없고 완도의 최남단인 정도리가 "땅끝"이 돼야한다며 "신토말관광지구조성사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지역 이기주의의 심화에 따른 지자체간 분쟁의 예를 들자면 한이 없지만 지난해 아산만의 항구이름으로 "평택항" "아산항"을 함께 쓰기로 조정하는등 정부는 지역주민의 갈등무마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다리가 놓였다고 섬이 육지가 될리는 없다. 더구나 이미 고유한 것이 된 남의 지명을 고집하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나중에 꿀 한식기보다 당장 엿한가락에 탐닉하는 것이 한국인이라 해도 그 지역의 독특한 이름과 관광상품을 개발해야만 관광객이 몰려들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