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명 조화론 .. 정만호 <국제부장>

독중의 독이 양잿물이다. 한모금이면 어지간한 생물은 다 죽인다. 염산도 그 못지않다. 닿는 것 마다 녹여 버린다. 성질도 상극이다. 한쪽은 알카리성 맹독이고 다른 쪽은 산성 독이다. 하지만 이 두가지 독을 적당히 섞으면 어떻게 될까. 마셔도 아무 탈 없다. 꼭 필요한 소금물이 된다. 화학적으로 말하면 염과 산의 중화다. 사물에서의 극과 극은 이렇게 조화한다. 이제 문명도 "충돌"에서 "조화"를 모색해 볼 때가 되고 있다.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적 가치" 간의 중화다. 다행스럽게도 서구학자 일각에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아시아가 빨리 회복되고 있고 서구에서나 가능하다던 "신경제"도 흔들거리더라는 인식에서다. 그런가하면 아시아국가들은 외면만하던 서구식 합리주의를 받아들이는데 여념이 없다. 아직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지만 이제 서서히 중화의 접점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조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2천5백년을 진화한 서구적 합리주의 시각으로 보면 아시아적 가치는 재앙의 원천이다. 아무 것도 명확하지 않은 자욱한 안개와 이중규범(리처드 홀부르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모든 일이 친소관계로 이루어지는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와 족벌주의(Nepotism), 부정부패(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 박사). 그 외에도 많다. 가부장적 권위를 악용한 장기독재, 그 과정에서 무시된 인권, 창의 말살... 그들은 70-80년대에 아시아식 경영과 유교적 전통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것은 "단견"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뒤집는다. 저 쪽만 그렇지도 않다. 서양의 근대 민주주의 이론보다 2천년이나 앞서 주권재민과 인본사상을 실천했던 아시아적 시각에서 보면 서구의 사람사는 모습은 천박하기 짝이 없다. 미국에서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30%가 사생아다. 성인남자의 2%가 감옥에 있거나 재판받을 일로 기소중인게 엉클 샘의 자화상이다. 이혼률은 50%를 넘나든다. 가정을 지키는 가치(Family Values)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납득하지 못하는 대목은 그리고도 많다. 13세 소녀가 아이를 낳고, 15세 소년이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고, 17세 청소년이 에이즈로 죽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 청년은 글을 읽을줄 모르는 세상. 모든 것이 이상적인줄 알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몹쓸 세상이라는 말이나올수 밖에 없게 돼있다. 부정적인 면만 들추어보는 이런 시각은 급기야 "문명충돌론"으로까지 이어져 있다. 서로 다른 문명간의 갈등이 다음 세대의 지구적 분쟁을 야기한다는 주장이다. 서로를 망세론으로 매도하는 지금의 자세에 변화가 없다면 문명충돌론은 이론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어느 대학자가 나서서 "문명 조화론"을 주창하고 나설 때다. 양쪽의 순기능을 다른 편에 심어 보완시키는 작업이다. 아시아적 가치가 가지고 있는 신의와 연대의식, 순종, 경로효친의 정신을 서구의 물질문화에 접목시키고 서구의 준법과 합리주의, 개인존중의 사고를아시아에 보편화시키는 일이다. 아시아위기가 바로 아시아적 가치 때문이었는지, 인성말살이 서구적 가치 때문이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두 문명이 화합하지 않을 때 맞는것은 "세계화된 위기"라는 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