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씨, 소설시 '내영혼의 백야'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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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기도 같은 것을 드리면/마음이 평화로워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판까지 이르렀으면서도 세상을 놓고 싶지가 않았습니다./두렵고/두렵고/두려웠습니다" 작가 조성기(47)씨가 소설시라는 이름으로 "내 영혼의 백야"(민음사)를 펴냈다. 소설적인 이야기를 시의 형식에 담은 독특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3년전 단식 후유증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작가의 체험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책갈피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만져본 죽음의 옷자락"이 나부낀다. 삶과 죽음이 맞닿는 곳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그것은 고독조차 없는 고독의 세계, 캄캄한 무의 세계, 한마디로 단절입니다" 블랙홀같은 그 "절대 공간"을 향해 작가는 풍선묶음을 들고 가시밭을 걷듯 위태롭게 걸음을 옮긴다. 아무렇지도 않게 밤낮이 반복되고 평범한 일상사가 조곤조곤 지나가던 길. 그러나 삶의 벼랑끝에서는 사소한 것들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벗고 순수의 몸으로 내려다 보는 탈속의 세계.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세상을 보다가/내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보았습니다" 병이 깊어진 그는 "전혀 예기치 못하고 있다가 남편의 유언을 듣게 될 아내"를 안쓰럽게 떠올린다. 신혼생활 열흘만에 서독으로 돌아가 "이 병원 저 병원 순례자의 삶을 살다가/방 한 칸 마련해 놓지 않은 나에게로 와 또 순례자의 삶을 살았"던 아내. "결혼 하고 헤어져서는 1년 반만에 다시 만났지만/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전에는 아내가 떠났지만 이제는 내가 떠납니다" 그는 아내에게 유언을 하기 전에 임종 예배를 드리러 혼자 새벽 길을 나선다. 녹두거리에서 "장의차로 보이는 택시"를 잡아 타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닿자 광장에 우뚝 솟은 교회의 돔이 노아의 방주처럼 보이지 않고 거대한 무덤의 뚜껑처럼 보인다. "내"가 마지막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은 쓸쓸하지만 고요하다. 그러나 작가는 "백야"의 저 편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 등불을 밀어 올리는 힘은 지상의 소중한 기억들이다. 특히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운 날의 약속"은 가장 눈물겨운 생명의 샘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저승에서 이승으로 쏜살같이 편입"된 순간, 멀고 먼 "중년의 다리"를 건너 세상의 "큰 아침"을 맞는 그의 표정이 한없이 맑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