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역학 이야기] 슬픔과 분노의 교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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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 혹은 정신(mind)은 인체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에, 플라톤은 뇌에 있다고 믿었다. 요즘은 대뇌의 영역에 있음이 당연시되고 있다. 현대의 학문들은 대개 서구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 또한 서구적 관점의 귀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학에서 정신은 화의 영역이다. 화기가 지나쳐 위로 치솟을 경우 정신계는 산란하게 된다. 곧 이성으로 통제가 안되는 상태. 황제내경에서 밝힌 화가 통제하는 대표적 신체장기는 심장이다. 고도의 논리적 추론을 제외하고 원초적 느낌만 얘기할 때 마음이 작동하는 부위를 심장에 위치시키는 것이 무리한 발상일까. 동양의학의 고전에서 이와 같이 설파했을 때는 뭔가 이치에 부합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장은 다른 장기에 비해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슬픔이나 분노 혹은 공포등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운동으로 인한 경우를 제외하고 심장이 몹시 두근거리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오행속성에서 슬픔은 금에, 분노는 목에 해당된다. 금을 녹이기 위해 화는 열심히 힘을 써야 한다(화극금). 금으로 표상되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이빨을 앙다무는 심장의 괴로움이다. 흘러들어온 분노의 감정은 고스란히 간(목이 직접 작용하는 부위)과 심장으로 전해진다(목이 생하는 부위:목생화). 심장의 화기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발전하며 심해지면 실성하게 된다. 슬픔과 분노를 조화있고 여유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자기통제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역의 64번째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는 이러한 점을 잘 일깨워준다. 하늘에 있는 불은 위로 치솟기만 하고 땅의 물은 아래로만 스며든다. 상호 영원히 만나지 못할 불행의 연인이다. 인체의 균형이 이와 같이 되어선 안된다. 성철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