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선택할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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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 저마다의 노선을 분명히하고 있다. 슈뢰더 독일총리의 등장은 그 분수령이다. 이로써 유럽의 주축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는 모두 중도좌파 성향의 정권이 들어섰다. 60년대 학생운동의 주역(스튜던트 파워)들이 정치전면을 장악하면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다. 슈뢰더도 그렇지만 지난해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내세웠던 선거구호는 "스테이크홀더 캐피털리즘(Stakeholder Capitalism)"이었다. 번역하자면 "이해당사자주의"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가치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기업개혁의 목표가 되어 있는 미국식 "셰어홀더 캐피털리즘(Shareholder Capitalism)"에 대비되는 말이다. 일부 아시아국들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은 개방만이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는 새로운 선택을 보여준다. 문제는 지금 한국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구제금융 조건으로 받아들인 미국식 개혁은 질문이 불허되는 "경전"이 돼있다. 진보성향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우파적 DJ노믹스를 전면에 내건 것도 이런 저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일 게다. 슈뢰더의 등장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노선을 선택할 능력을 결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철학없는 투쟁만을 벌이다 보니 난타전 외엔 보여줄 것이 없는 국정감사장을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정규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