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시아 성학회' 특별칼럼] (42) '사랑의 성숙'

사랑은 헤아릴수 없이 많은 수식어로 표현돼왔다. 어떤 이는 사랑이란 단어가 남용된다하여 그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Love"대신 가치높고 고귀하다는 뜻을 지닌 "Luv"를 사용하자는 주장을 연극을 통해 표현하기도 했다. 어쨌든 사랑이란 고대부터 지금까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은 사랑을 크게 에로스(Eros) 아가페(Agape) 필로스(Philos)로 나눴다. 에로스는 잘 아는바와 같이 이성간의 호감을 기본으로 하는 사랑으로서 축복받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상대의 육체를 원하는 "성접촉"과 진정한 에로스는 구분돼야 할 것이다. 아가페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사랑으로서 지속적이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정신적인 측면이 강한 사랑이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 신앙 진리 지식에 대한 사랑이다. 필로스는 성적이지 않으면서 동질사회에서 형성되는 동료애, 형제애, 전우애 같은 것이다. 중고등학생들간에 유행하는 마니또나 친한 친구끼리 스티커사진을 함께 붙이고 다니는 행위는 필로스를 바탕으로 한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사랑도 이에 속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마니아(Mania) 루드스(Ludus) 프라그마(Pragma)라는 세가지 사랑이 추가돼 얘기되고 있다. 마니아는 이성적인 조절이 불가능해 맹목적이고 강박적이며 질투가 강한 사랑이다. 따라서 가장 다치기 쉬운 감정적인 형태이고 사랑의 대상이 있어도 행복하기 보다는 불행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이성에 대한 동경, 10대간의 사랑, 혹은 연예인에 대한 열광적인 표현이다. 루드스는 사랑을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는 형태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듯 상대를 유혹하려 하며 성적인 목적이나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취해지는 것으로 엄밀히 말한다면 사랑이라 할수 없고 대개 겉으로는 에로스를 표방하려 한다. 프라그마는 결혼 후 서로에 대한 책임감 일체감, 오랜 동반자에 대한 신뢰감 등에서 비롯되는 사랑이다. 강한 열정으로 시작해 화합과 다툼속에서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형성되면서 상대가 언제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성숙된 사랑이다. 노부부가 서로 팔짱을 끼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흔히 볼수 있는 프라그마 일 것이다. 젊어서는 좌충우돌하는 마니아와 한 여성에게 뜨거운 사랑을 바치는 에로스를 지향하고 30대 이후에는 사회속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필로스를 얻는게 어떨까. 그리고 점차 내가 받은 만큼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부모와 자녀에게 쏟으면서, 노년기에 진정한 프라그마를 느낀다면 한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민권식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