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그린스펀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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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의 정책당국자중 가장 신망받는 인물은 아마도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의 팬클럽까지 결성돼 인터넷에 "닥터 그린스펀"이라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 신망에 걸맞게 영향력도 막강하다. 금융시장에서는 그린스펀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목의 대상이다. 경제뉴스 전문 케이블TV 채널인 CNBC는 "그린스펀 브리프케이스 지수(GBI)"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때 그린스펀이 들고가는 서류가방이 두꺼울수록 금리조정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이 이처럼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FRB의장으로서의 투철한 소신과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그 능력과 소신은 지난 20일 미국 하원에서의 증언에서 또한번 과시됐다. 그는 이날 미국의 증시과열에 대한 경고외에 두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첫째는 유로화 출범이후에도 달러의 위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다음날 발표될 미국의 지난해 11월 무역적자를 염두에 둔 고도의 계산된 발언이었다. 실제로 21일 뉴욕시장에서는 무역적자 증가소식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린스펀이 던진 또하나의 메시지는 바로 전날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발표한 최저임금인상 방침 사회보장기금의 주식투자 방침은 옳지 못하다는 지적이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중앙은행 총재가 대통령에게 면박을 준 셈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환란 청문회가 열리면서 당시 정책당국자들의 행적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한결같이 실망스런 모습들이다. 소신이나 능력은 찾아볼 수 없다.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이를 직언하지 못했거나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위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은행들도 파산할 수 있다"는 섣부른 발언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킨 당국자들도 있었다. 이런 행태는 정권이 바뀐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정책당국자들은 그들이 입안한 정책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기에 앞서 윗사람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팬클럽을 몰고다니는 정책당국자를 가져보게 될지 새삼 가슴이 답답해 진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