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업계 '도요타식 혁신' 붐 .. 보잉/노드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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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미국 산업계의 화두였던 일본식 생산성 혁신이 미 업계 일각에서 다시 각광받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의 "린(lean)" 생산방식을 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보잉 등 항공업계가 대표적인 예다. 보잉 등은 글로벌 경제 위기로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면서 분위기 쇄신을 위한 돌파구를 도요타식 혁신에서 찾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9일 보도했다. 다품종 소량 생산과 부품의 적기 조달을 통한 무재고 시스템(Just in time)을 골자로 하는 도요타 방식이 항공기 제작 공정에서도 유용함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있는 보잉의 C 17 군용수송기 공장은 3년전 도요타 방식을 도입한 뒤 생산성을 두배 이상 높였다. 이는 미국의 국방 예산을 수백만달러 이상 절감시키는 효과로 이어졌다. 보잉은 또 717 기종에 투입되는 발동기 덮개의 평균 제작 기간을 과거의 43일에서 7일로 대폭 단축하는데 성공했다. 중앙에서 재고를 관리하던 2년전 시스템하에서는 최신 기종인 737, 700기종의 발동기 덮개를 생산하는데 18명을 투입하고도 한달에 2개를 만들어내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14명이 매달 23개씩을 거뜬히 생산한다. 군용기 전문 생산업체인 노스롭사도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B-2폭격기 생산라인의 경우 과거엔 기능공이 70피트 짜리 특수 테이프를 본체에 붙이는데 무려 8.4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화학약품 호스 등 작업에 필요한 각종 자재를 가져다 쓰기 위해서 26번씩이나 비행기를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린 방식을 적용한 뒤로는 작업기간 동안 비행기에서 내려올 일이 없어졌고 덕분에 작업 시간이 1.62시간으로 크게 줄었다. 이처럼 도요타 방식의 유용성이 속속 확인되면서 보잉은 회의실들마다 도요타자동차의 중역 이름을 딴 간판을 달았는가 하면 카이젠(개선) 등 일본 용어를 쓰는 게 유행이 됐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보잉이 린 방식을 도입한 이후에도 불량률 등 고질적인 문제들이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도요타 방식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노조쪽에서도 린 방식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보잉의 부품 협력업체인 구드리치사는 작년 12월 린 방식을 본격 적용키로 함에 따라 4개 공장을 폐쇄하는 한편 7백75명의 인력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90년 "세상을 뒤바꿔놓은 기계" 라는 저서를 통해 도요타방식에 "린"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미국의 경영평론가 제임스 워맥은 "미국 기업들이 린 방식에서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이는 본질이 아닌 거죽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라고 지적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