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의 현장] (10) '국립국악원 예악당'..전통의 멋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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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예악당은 전통건축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건물이다. 궁궐지붕과 석탑기단을 조화시킨 모습에서 한국 고유 건축물의 절제된균형미가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유리와 화강석을 사용한 외장과 다양하게 갖춰진 첨단기능에서현대적인 감각을 엿볼수 있다. 이 건물은 국내 최초.최대규모의 국악전용 공연장이란 이력도 갖고 있다. 국립국악원예악당은 서초동 우면산 기슭 남부순환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다. 아래쪽에는 예술의 전당이 있다. 예술의 전당과 같은 부지에 지어진 만큼 동.서양 음악공간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단정하게 쌓아올린 계단을 따라 오르면 넓은 광장과 함께 단아한 모습의 건물이 나타난다. 4개의 건물들이 "ㄷ"자 형태로 다소곳이 들어서있다. 중앙에 대극장인 예악당이 배치됐고 양옆에 소극장인 우면당과 박물관이 있다. 사무동은 원할한 업무지원을 위해 예악당과 다리를 통해 연결된다. 이곳엔 단원들의 연습장도 함께 있다. 예악당 밖의 오른쪽엔 야외공연장이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다. 건물 외부는 간결하게 뽑아올린 평면벽들과 연한 살색 대리석으로 이뤄졌다. 4채의 건물 모두가 정갈한 분위기를 풍긴다. 지붕은 궁궐지붕을 극도로 단순화시킨 모습이다. 그곳에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우리만의 정서가 흐른다. 마치 사찰이나 궁궐, 단아한 한옥건물 앞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현대미와 전통미가 공존하는 셈이다. 한국현대건축에서 전통성을 표현할때 옛 건물의 지붕이나 세부문양을 복제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국악원건물들은 이같은 표피적 전통승계에서 탈피했다. 전통건축의 외형보다는 내면에 들어있는 형식적 요소나 공간적 특징을 추출해냈기 때문이다. 국악원건물 전체의 설계개념은 단순화된 석조탑이다. 예악당과 우면당의 입면선들에서는 석탑 저층 기단부 형상이 드러난다. 석탑 기단이 보여주는 구조적 안정성과 정형미가 느껴진다. 각 건물은 전통 사찰의 가람배치방식을 따랐다. 이 때문인지 국악원 광장에 들어서면 더없이 편안한 느낌이 든다. 국립국악원건물 4개동은 모두 비슷한 형태의 벽체와 지붕, 창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개별 건물의 외형은 다르지만 전체적 통일성과 일체감이 드러난다. 각 건물의 사이공간엔 마당을 만들어 국악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길놀이나공연의 앞.뒤풀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국립국악원건물중 핵심은 단연 예악당이다. 날렵한 전통지붕선과 화강석을 이용한 평면벽처리로 중후하면서도 기품있는 분위기가 풍긴다. 예약당 내부도 전통적인 공연장 양식을 따랐다. 무대모양이나 천정, 객석배치 등에서도 국악전문 공연장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국악은 양악과 울림시간(잔향)이 다르기 때문에 옆벽면 가림막 뒤에 별도의 흡음성 커텐을 설치, 상황에 따라 조작이 가능토록 했다. 천정엔 방패연 모양의 음향반사판을 달아맸다. 방패연이라는 전통놀이도구를 상징화함으로써 신선한 느낌을 준다. 또 전통건축에서 대규모 홀의 구성요소인 공포, 우물식 격자 천장, 창살 등을 장식패턴으로 사용해 국악공연장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이같은 전통건축의 상징적 요소는 소극장과 박물관 사무동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배어있다. 국악원 건물을 둘러싼 담장과 작은 출입문도 전통적 형상으로 처리했다. 예악당 밖의 오른쪽에는 산자락 지형을 이용해 야외공연장을 만들었다. 틈새공간을 운치있게 살려내는 전통건축의 묘미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또 박물관 앞에는 원두막을 현대적 감각으로 형상화한 단정한 쉼터가 들어서 있다. 국악원은 설계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참고할 만한 국악전용극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전자료조사에만 1년이 걸렸다. 국악의 장르를 분류하고 각각의 공연형태,잔향,공연자들의 특성 등을 분석해 이를 자료화했다. 국악원내에 예악당과 우면당을 분리해 지은 것도 자료연구에 기초했다. 국악은 종류에 맞게 객석규모를 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결론에 따른 것이다. 예악당은 규모를 8백석 이하로 했다. 우면당은 다양한 국악장르를 포괄해야 하기에 2백60~5백60석의 가변공간으로만들었다. 예약당의 무대구성은 최첨단시스템을 도입했다. 다양한 이동무대가 전자동으로 작동돼 공연장르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정악이나 창극, 궁중악 등 웅장한 무대가 필요한 장르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우면당엔 리프트를 설치해 돌출무대를 만들었다. 사물놀이 등 관객과 어우러지는 공연때는 양쪽 옆면도 객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 공간가변성을 높이기 위한 무대구성이다. 국립국악원예악당은 전통건축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문제를 두고 심심찮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건축가의 주장대로 전통건축의 내면형식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느냐를 둘러싼 논쟁이다. 모범사례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극단적 비판 사례로도 언급된다. 건축에 있어 "우리것의 반영"이 얼마나 어려운 숙제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떻든 국립국악원예악당은 한국의 현대건축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긍정적 지표인 것만은 분명하다. 양악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을 거부감없이 불러들이는 이 건물은 탁월한 예술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 건축명세 ] 설계 : 광장건축 시공 : (주)한양 규모 : 건축면적 -대극장 1179평, 소극장 396평, 박물관 399평, 사무동 512평. 층수 - 대극장 지하1층 지상4층, 소극장 지하1층 지상3층. 위치 : 서울시 서추구 서초동 700 공사기간 : 1985.12~1996.10 설계기간 : 1984.7~1986.4 구조 : 철골철근콘크리트구조, 철골트러스지붕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