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의] 공조체제 한계 .. '10년동안 뭘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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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는 지난 10년간 회원국 정상들의 친목모임을 마련한 것외에 아무런 일도 못했다" 오클랜드 정상회의에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오지 않는다. 그는 대표적인 APEC비판론자다. 요즈음 국제경제흐름에 불만이 많은 마하티르 총리의 얘기이지만 일정부분 설득력을 얻고있는게 사실이다. 특히 동아시아 외환위기이후 "APEC무용론"까지 고개를 들고있을 정도다. 사실 APEC은 89년 출범 당시부터 그렇게 큰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회원국들의 경제발전단계나 언어, 인종, 문화 등의 이질감과 수준차를 감안할 때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지역기반 하나만으로 지역경제연대를 얘기하는 것부터 무리였다. 애초부터 유럽연합(EU)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같은 지역경제통합을 기대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이런 출범 당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지난 10년의 성과를 놓고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견해다. APEC은 지역경제기구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인 "역내(회원국간) 무역및 투자장벽"을 낮추는데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상회의 때 마다 공동성명에서 "무역및 투자자유화와 원활화"를 강조해왔지만 우루과이라운드(UR)수준에서 멤돌았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7년 동아시아가 금융위기를 겪는동안 APEC은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마하티르 총리를 비롯한 비판론자들이 지역경제기구로서의 존재가치를 의심하는 "무용론"을 들고나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세계경제질서가 지난 10년간 급변한 것도 APEC의 위상과 역할을 무색케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APEC은 지난 80년대 "욱일승천"하던 일본경제와 그 뒤를 따르는 한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경제 전성시대의 산물이다. 당시 "유럽경제는 기대할게 없고 미국도 위태위태하고 일본이 이끄는 동아시아가 21세기 세계경제를 주도한다"는 진단이 일반론으로 통하고 있을 때였다. 특히, 미국은 동아시아의 폭발적인 경제발전 에너지를 공유할 속셈으로 APEC창설에 적극적으로 뛰었다. 게다가 미국은 당시 일본의 암묵적인 지원아래 동남아 지역경제통합 움직임에 제동을 걸겠다는 속셈도 깔고있었다. 일부 APEC분석가들은 "미국은 APEC의 이른바 열린지역주의(Open Regionalism)슬로건 아래 자국의 절대적인 이해가 걸린 농산물시장개방을 이끌어내는데 APEC을 곧잘 활용했다"고 분석한다. 농림부 관계자도 "UR협상이 EU, 일본, 개도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지난 93년 시애틀의 제5차 APEC 각료회담에서 "UR를 93년12월15일까지 끝낸다"는 선언문을 끌어내 협상을 급진전시켰다"고 말했다. 이제 뉴라운드를 앞두고 비슷한 모습이 재연되고있다. 지난 6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개최된 APEC 통상장관 회담에서 미국은 채소 곡물가공품 등 식품에 대해 2004년까지, 콩 참깨 들기름 등 유지종자는 2002년까지 관세를 철폐하는 "농산물 조기자유화"를 시도했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공동대응으로 무산되고 대신 "농산물은 차기 WTO 협상(뉴라운드)에서 새롭게 협상한다"는 선언문이 채택됐다. 만약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들의 제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을 경우 한국은 WTO 차기 농업협상(뉴라운드)이 개최되기도 전에 "농산물 조기자유화"를 선언하는 셈이 될 뻔했다. 이처럼 미국등의 이해가 걸린 농산물분야의 자유화 성과에 비해 한국 등이 학수고대하는 투자활성화나 기술협력 등은 10년이 지나도록 구체화된게 드물다. 그렇지만 APEC에 대한 평가와 한국의 대응은 전혀 별개 문제다. 비판론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한국으로선 이 기구를 가볍게 대할 수는없다는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특히 외환위기이후 수출과 외국인투자유치로 외화갈증을 풀어야 하는 한국으로선 과거 어느 때보다 APEC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게 우리 정부의 방침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의도 과거처럼 무역.투자활성화를 다짐하고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선에서 끝난다고 하더라도 한국으로선 분위기를 다지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 APEC 일지 ] 89년 11월 :제 1차 각료회의 - APEC협력목표및 기본원칙에 합의 90년 7월 :제 2차 각료회의 - APEC각료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합의 91년 11월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을 촉구하는 "UR 특별선언문" 채택 92년 9월 :방콕선언문 채택으로 APEC공식 국제기구로 발전 93년 11월 :제 1차 정상회의및 제 5차 각료회의 - 아.태 공동체의 경제비전(시애틀선언) 채택, 무역.투자 기본틀에 대한 선언 94년 11월 :제 2차 정상회의및 제 6차 각료회의 - 무역.투자 자유화 목표연도 설정, 경제위원회(EC) 설립 95년 11월 :제 3차 정상회의 및 제 7차 각료회의 - 무역.투자 자유화 15개 분야 설정및 추진일정 제시, 경제인 자문위원회 설치 96년 11월 :제 4차 정상회의밀 제 8차 각료회의 - 무역.투자 자유화 실행계획 채택.승인, 경제협력및 개발에 관한 기본원칙 채택, 민간부문의 참여계획 97년 11월 :제 5차 정상회의및 제 9차 각료회의 - 역내 금융불안문제에 대한 논의, 환경 에너지 등 9개분야에 대해 99년부터 시행키로 합의 98년 11월 :제 6차 정상회의및 제 10차 각료회의 -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위한 경기부양책 승인 전자상거래및 Y2K(컴퓨터 2000년 표기문제) 논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