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5,416억 추징'] 해외거래 리베이트 관행 '쐐기'

한진그룹 조사결과는 리베이트와 국제거래를 통한 외화유출과 탈세를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세무당국의 의지를 보여 준다. 관행처럼 벌어지는 탈세행위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일부 대기업들이 수출단가를 조작해 기업자금을 외국으로 유출한다는건 오래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고가장비를 도입하면서 받은 리베이트도 외화비자금 마련의 단골메뉴였다. 국세청이 외국기업과의 거래에서 벌어지는 탈세를 조사하기 어렵기 때문에가능한 일이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국제거래를 뒤졌다. 국제거래 분야도 더이상 성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 줬다. 재벌그룹 총수가 관련된 것이어도 덮고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 조사가 "재벌길들이기" 또는 "재벌개혁 압박" 차원인지, 아니면 국세청이 최근 선언한 "정도세정"을 순수하게 실천한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이건 간에 재벌그룹의 국제거래에 대한 "성역없고 제한없는" 조사가 최소한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추징규모 사상 최고 =한진 그룹계열사가 내야할 세금이 4천4백억원이고 조중훈 명예회장 조양호 회장 등 기업주가 개인돈으로 납부해야할 세금이 9백67억원이다. 그룹과 개인 모두 역대 세무조사 추징세액중 최대규모다. 이제까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1천억원 이상을 추징당한 곳은 현대그룹하나뿐이었다. 현대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93년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1천3백여억원을 추징당했다. 그러나 정치보복 성격이 짙었던 이 조사는 법원에서 모두 무효화됐다. 이밖에 93년 2월 조사를 받은 포항제철이 7백65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93년 6월엔 카지노업계 대부 전낙원씨가 운영하던 파라다이스그룹이 4백59억원을 추징당해 뒤를 이었다. 성역이 무너졌다 =권력기관의 사정활동에서 그룹총수는 언제나 예외였다. 그렇게 해야 국가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지금까지 공무원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의식이다. 국세청도 마찬가지였다. 대기업의 국제거래도 그동안 국세청이 건드리지 못했던 분야. 거래구조가 복잡한데다 증거확보도 어려워 감히 조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국제거래를 조사하면 "외화획득"을 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는 논리도 큰 이유중 하나였다. 이번 조사는 재벌총수의 탈세, 그것도 국제거래 과정에서의 자금유출을 문제삼음으로써 두개의 성역을 모두 깨뜨려 버렸다. 다른 그룹으로 확산가능성 =국세청은 올초 음성탈루소득 조사결과를 공개하면서 "앞으로 국제거래를 통한 불법적인 외화유출과 탈세를 집중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이 국제거래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은 개청이래 이 때가 처음이었다. 또 안정남 국세청장은 지난 9월 기자간담회에서 "사회지도층의 납세도의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며 재벌총수 및 2세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뜻을 비쳤다. 국세청은 이후 국제조세국 소속이었던 국제조사과를 조사국 산하로 옮겨 조사전담부서로 전환시켰다. 담당직원도 대폭 늘렸고 이들에 대한 전문교육도 강화했다. 많은 조사국 관계자들은 "국제거래 조사에 대한 상층부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행보는 다른 그룹도 "성역없는 조사"의 대상이 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이 정도세정이라는 원칙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며 "조만간 다른 그룹도 한진처럼 전면적인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