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희망의 세기 실망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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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정치는 다른 어느 분야에 못지않게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다. 1월초 시작된 외환청문회는 실패한 정부정책에 대한 단죄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5월에는 옷로비사건, 6월에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이 터져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7월부터 불거진 내각제 개헌 논란과 뒤이은 공동여당간 합당시도도 어정쩡하게 봉합됐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한단계 진보된 사안도 없지 않았다. 제한된 영역이나마 헌정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돼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방탄국회" 시비를 불러왔지만 국회가 3백7일이나 열려 "국회 상설화"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월남파병 이후 30여년만에 전투병의 해외파병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 과정에서 한 야당의원이 당론을 따르지 않고 소신투표를 감행,정당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찬사가 뒤따랐다. 정치권은 한해를 마감하면서 28~3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미뤄놨던 각종 법안들을 처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선거법 협상을 둘러싼 여야간, 공동여당간 갈등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아 올해안에 정쟁을 마무리짓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공동여당의 한 축인 자민련은 복합선거구제를 관철해야 한다며 선거법 협상에서 "몽니"를 부리고 있고, 한나라당도 언론문건 국정조사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며 연내 정치현안 타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중후보등록과 "석패율" 등 생소한 제도를 내세우며 영남권 진출에 목매달고 있다. 정치불신을 떠나 정치"혐오"로 발전하고 있는 국민들의 반감에는 아랑곳않고당리당략에만 치우치고 있는 형국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내 모든 현안을 털고 새로운 세기를 희망속에 맞이하자고제안했다. 그러나 단독으로라도 정쟁중단을 선언키로 했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이를 내년으로 넘기고 총재회담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국을 이끌어갈 책임이 있는 국민회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지도력 부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전세계가 다가올 새천년을 준비하고 희망을 얘기하는데 한국정치만 유독 구세기의 낡은 틀 속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쟁으로 새천년을 시작하고 새해 첫 총선이 또 다시 지역감정으로 내몰릴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