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익명성과 테러 .. 이해진 <네이버컴 사장>

이해진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정말 구하기 힘든 연주회 티켓 두장이 보낸 사람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은 채 배달되었다. 부부는 아무리 고민해 봐도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주회에 가보면 누가 보냈는지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연주회에 갔으나
거기서도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집의 귀한 물건이 모조리 사라지고 탁자에는 메모가 한장 놓여 있었다.

"이제 누가 보냈는지 알겠지"

인터넷 상거래에서는 대금 지불을 온라인으로 하고 물건은 택배로 배달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인터넷
상거래가 아주 손쉽고 편리한 방법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이트에서 물건을 산 사람의 정보를 일정 시간 후에
완전히 파기해 보낸 사람이 누군지 영영 알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얼마전에 재미있는 사이트를 소개받았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면 우선 다양한 크기의 개(멍멍 짖는)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 사이트는 보낸 사람의 이름을 익명으로 하면서 돈을 받은 뒤 원하는
사람에게 선택한 개의 똥을 예쁘게 포장해서 보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직장 상사같은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귀여운 복수(?) 또는 응징(?)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사이트는 이같이 익명으로 물건을 보내고 또 보낸 사람의 정보를 영원히
알 수 없게 만드는 형태의 사업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상거래의 편리성과 익명성을 이용,개의 배설물을 돈받고 팔아먹는
기막힌 사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개념을 응용할 수 있는 사업거리도
무궁무진하게 떠올릴 수 있다.

앞으로 인터넷에는 이처럼 기존 상거래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형태의 사업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이런 귀여운 응징(?) 사업은 국내에서도 당장 인기를 끌만하다.

새천년 인터넷 시대를 맞아서도 시민 단체의 적극적 정치 참여 노력을,
악법도 법이라면서 버티고 저지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당장 이들에게 처절한
응징(?)을 하고픈 생각이 절로 난다. 개의 그것으로는 부족하니 좀 비싸더라도 코끼리나 하마의 그것을 아낌없이
선물로 보내주면 어떨까.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