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7일자) 조합원의 뜻 제대로 읽어야

서울지하철공사의 구조조정 및 임금협약안에 대한 투표에서 노동조합원들이
압도적 지지를 표시한 것은 노동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 조짐으로 보인다.

노조 집행부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노조규약을 무시한 불법 투표라며
투표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과반수(54%)의
조합원이 투표에 참여해 86%가 지지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의 전위대 격으로 거의 해마다 파업을 되풀이해온
강성 노조라는 점을 생각하면 조합원들이 무파업을 선언한 집행부의 온건
노선을 선택한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하겠다.

노조 집행부는 투표결과를 조합원에 의한 혁명이라며 새로운 노조문화를
만드는 데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일도 노조 위원장도 "갈등과 대립의 소모적인 노사관계를 청산하고 조합을
창조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라는 조합원의 뜻"이라고 말하고 "노사평화
속에서 조합원의 실리를 얻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대립적 노사관계로 양측 모두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노사문화가 건설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물론 이번 투표만으로 새로운 노사관계가 정착된다고 장담하기는 이르다고
할 것이다.

다수 노조원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투표과정의 흠을 꼬집어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등 노노갈등이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 노조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해 온 민주노총도 "파업이나 투쟁을
포기하는 것은 노동자의 최후 무기를 버리는 것"이라며 거부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강성으로 분류되는 비대위측 대의원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일은 현 집행부에 남겨진 숙제라 하겠다.

그러나 비대위측은 과거 지하철 노조의 강경 투쟁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헛된 명분에 매달려, 또는 노조의 주도권 다툼으로 무리한 파업을 강행한
적은 없었는지, 노노갈등으로 동료간의 의가 상한 일은 없었는지, 또 시민
들로부터 얼마나 호응을 받았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되풀이되는 파업에 불법과 폭력마저 끼다보니 시민들의 지지와 동정이
염증으로 바뀐 것도 부인할 수 없고, 생활에 큰 불편을 주는 특성을 무시한
강경일변도의 투쟁이 시민들의 외면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우리끼리의 살벌한 투쟁과 무관하게 바깥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나라의 장래도 낙관할 수 없다. 노조 지도자들이 세계를 조망하며 조합원의 뜻을 진지하게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