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바꿔'는 시대의 외침 .. 박영배 <정치부장>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다들 미쳐가고만 있어/어느 누굴 믿어/어찌 믿어
더는 못 믿어/누가 누굴 욕하는 거야/그러는 넌 얼마나 깨끗해/너나 할 것
없이 세상속에 속물들이야/바꿔 바꿔 바꿔 모든걸 다 바꿔/사랑도 다 바꿔/
거짓도 다 바꿔/세상을 다 바꿔.

테크노 가수 이정현이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바꿔"의 노랫말이다. 참 절묘하게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빠른 곡이어서 신도 난다.

지금 한쪽에서는 이 노래처럼 정치를 "바꿔"라고 소리치고, 다른 쪽에서는
까불면 "다쳐"라고 맞고함을 치고 있다. 확 바꿔버리라고 소리치는 쪽은 시민단체들이요, 자칫 다칠 것이라고 겁주는
쪽은 보수세력을 표방하고 있는 자민련이다.

이 "바꿔" "다쳐" 공방속에 난데없이 "음모론"이 불거져 나왔다.

따라서 정치판은 또다시 난장판이 돼 버렸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도대체 분간못할 지경이 됐다.

갈피를 못잡는 이 음모론은 꼼꼼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애초 "국민의 정부"는 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의 전신)와 자민련의
공동정권으로 시작됐다. 두 여당은 2년동안 IMF를 극복하면서 경제를 회생시켰다.

스스로 말하듯 국가파산 직전에서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구조조정도 하고 많은 개혁도 했다.

대통령과 자민련 몫의 총리(김종필), 총재(박태준)가 1주일이 멀다하고
만나 국사와 정치를 논의했다.

혹여 잊을세라 기회있을 때마다 공동정권의 정신을 강조했고, 공조에는
한치의 틈도 없음을 누차 되뇌었다.

공동운명체의 형제애를 과시해 왔던 것이다.

그러했던 두 당이 일순 원수지간으로 변했다.

자민련은 민주당강령에 내각제가 빠졌다고 직격탄을 퍼붓더니, 총선시민연대
가 총선출마 부적격자로 김종필 명예총재를 지목하자 청와대와 시민단체들간
이 모종의 음모를 꾀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급기야 자민련 사람들은 국회의사당에서 공조파기를 외쳤다.

헌정을 수호하겠다며 몇몇은 삭발도 했다.

이런 과정속에서 자민련은 소기의 성과(충청권의 단결)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위 음모론으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했다는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만고의 진리가 또 한번 확인된
현장이다.

자민련의 음모론에 대해 청와대와 민주당이 발끈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 총선시민연대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음모론의 증거를 대라며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다.

30일에는 군중집회까지 열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 간의 이러한 공방속에서 국민들은 정말 헷갈리고 있다.

과연 음모가 있었던 것인가.

그런데 분명한 것은 지금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1세기는 NGO(비정부기구)시대라고 할 만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영향력 또한 욱일승천기세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에도 이미 NGO시대는 도래했다.

이번 총선시민연대가 총선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자 정치관련 인터넷사이트
에는 그야말로 수십만건의 의견들이 쇄도했다.

비판적인 글보다는 지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인터넷인구는 1천만명에 육박하고 그 70~80%가 20~30대이다.

총선시민연대는 네티즌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조직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있다.

이로 인해 네티즌들은 자연스레 연대와 동맹이 형성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의 특징은 적극적인 정치참여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파워는 가공할 만하다.

16대 총선에서 선거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예견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들은 지난 선거에서는 별 힘을 갖지 못했다.

인터넷 초창기였기 때문이다.

4.19와 6.10이 민중에 의한 혁명이었다면 이번은 네티즌 혁명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정치참여자들인 20~30대는 정치개혁을 가장 희구하는
세력이다.

보스 중심의 정당운영을 비판해왔고 비효율로 일관한 국회의 무용론을
주장해왔다.

정치인의 부정부패에 신물이 나 있고 지역갈등 조장에 격앙돼 있다.

이들을 버팀목으로 갖고 있는 수백개 단체의 총선시민연대가 어느 정파와
음모를 꾸미고 정권의 핵심부와 내통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투명한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을 수 있는가.

하루 이틀만 지나면 다 들통나 오랏줄에 묶여 줄줄이 교도소로 직행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정치권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여론에 동물적인 후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인일진대 이를 애써 외면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바꿀 것을 외치는 도도한 물결은 이미 급류를 타고 있다.

시민단체의 운동을 사시로만 볼 일이 아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