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예산집행 '이상한 산술'

지난해 나라살림에 쓰고 남은 예산을 처리하면서 정부가 이상한 산술법을
개발했다.

22일 경제장관간담회 결과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청와대 당국자는 지난해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힌데다 예산을 절감,
남은 돈이 4조3천억원이라며 이 가운데 60%는 정부빚 갚는데 쓰고 40%는
"생산적 복지"재원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예산처의 설명을 들으면 실상은 다르다.

더 걷힌 세금중 2조5천억원 가량은 이미 나라살림의 적자를 메우는데 투입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예산중 현재 남은 것은 1조7천억~1조8천억원 정도.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지난해 예산에서 남은 전부(1백%)를 중산층과
서민보호에 털어넣는 셈이다.

정부가 이렇게 간단한 산수를 복잡하게 계산한 이유는 뭘까. 짐작컨대 40%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은채 남은 돈을 모두 생산적 복지를
위해 쓴다면 상당한 반발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먼저 "1백조원이 넘는 부채를 갚을 생각은 하지않고 선심 행정만 펴겠다는
것이냐"는 비난부터 일 것이다.

재원산출상의 이런 문제점 말고도 현 상황에서 남은 세금을 모두 저소득층
지원에만 쓰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은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친"격이 됐다. 사실은 산술법이 문제가 아니라 이같은 결정자체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상당기간 빚쟁이를 면할 수 없게 돼 있다.

그 빚은 다음 세대에게 넘어간다.

다음 세대는 빚을 갚으려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세대착취"란 비난을 면할
수가 없다.

기성세대들이 못나 진 빚을 다음세대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이다.

물론 동시대의 경제적 소외층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빚만 갚다가 사회안전망을 깨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돈은 우선순위를 냉정하게 계산하고 균형있게
써야 하는 것이다.

생산적 복지에 쓰려면 16대 국회가 구성된뒤 추경예산을 다시 편성해야
한다.

집행에는 앞으로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얘기다.

빨라도 7월께는 돼야 할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저소득층 지원방침을 미리부터 밝힌 것도 배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친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