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위증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학습에 의해 배워지는 행위라기 보다는 본능적인
행위라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견해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후천적으로 교육되어야 하는
도덕적인 것에 속한다.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말을 배워가는 과정만 관찰해도
거짓말이 본능적인 것임은 쉽게 알 수 있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인지,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인지, 요즘 우리사회
처럼 거짓말이 횡행하는 곳은 없을 듯 싶다.

거짓말은 너무나 인간적인 것처럼 보이고 반면에 진실이란 것을 비인간적
이고 난해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특히 자주 반복되는 정객들의 거짓말은 신분과 직위를 무색케하는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어서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정치인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법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법정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짓말을 너무
잘 해 재판이 마치 "거짓말 경연대회"를 여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지난해 위증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5천4백73명으로 98년 4천3백18명에
비해 1천1백여명이나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인구10만명당 일본에 비해 1백15배나 되는 수치라고 한다.

80년 1천6백건, 96년 2천9백66건에 지나지 않았던 위증은 날이 갈수록 급증
하는 추세다. 이처럼 법정에서 조차 위증이 난무하는 이유는 위증죄 기소율이 고작 20%
이내고 그나마 민사소송의 경우 대부분 실형이 아닌 벌금.기소유예로 끝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위증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주고 진실을 밝히는 사법권행사를
방해하는 것이므로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한다.

아직 과거 유교사회의 의리에 얽매인 온정주의에 머물러 있는 국민의식만
탓할것이 아니다.

오히려 판.검사들의 온정주의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 어거스틴은 진실을 숨기는 자와 거짓말을 하는 자는 누구라도 죄가
있다고 했다. 전자는 봉사할 마음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며, 후자는 해독을 끼칠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