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겉도는 영사업무

지난 8일 저녁 윤나은이라는 한국 여학생이 차에 치여 사망했다.

운전사는 뺑소니쳤다. 사고가 난 이틀후(10일)에야 경찰은 29세의 여자변호사인 제인 와그너가 뺑소니 혐의로 체포됐으나 5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경찰에서 "사슴을 친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석연치 않은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설혹 사슴이 죽었더라도 사고현장을 지키고 전후사정을 살피는 것이 운전자의 의무다.

보험청구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사람과 사슴을 운운하는 정도면 마약이나 음주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찰이 이 부분을 밝히기 위해 채혈 등 수사를 제대로 했는지도 관심사다.

와그너는 이미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녀의 변호사를 통해서만 말하고 있다.

피해자에겐 위로의 전화 한마디도 없다. 경찰은 사고 다음날(9일) 사고 차량을 수배해놓고도 운전자의 신원확인을 꺼려했다.

차량을 찾았지만 누가 운전했는지는 더 수사를 해봐야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변호사는 "와그너가 다음날 TV를 보고 자신이 사고를 낸 것으로 알고 그때부터 경찰에 협조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결국 와그너는 만반의 법정대응태세에 들어가 있다고 봐야한다.

그녀의 변호사 로드니 레플러는 "그녀의 유죄가 인정되려면 그녀가 사람을 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이미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피해자인 윤양 가족은 정신적으로 경황이 없다.

현지언어에도 익숙하지 않다.

이곳 경찰이나 법률문제에는 더더욱 경험이 없다.

이런 경우 이 가족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지를 감시해야 할 당사자는 누구인가.

자국민의 법적 지위 보호문제보다 더 중요한 영사업무는 없을 것이다.

채널5,9 등 TV는 물론 워싱턴포스트가 6명의 기자를 풀어 취재하고 있는 이 사고처럼 워싱턴의 적지 않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8일 이후 12일 현재까지 와그너의 집,페어팩스 카운티 경찰서,그리고 와그너를 뺑소니혐의로 체포토록 한 레이몬드 모로 검사 사무실 등 그 어디를 가도 한국대사관 직원의 흔적은 찾을 길 없다. "선례가 없어 돕기 곤란하다는 게 대사관의 입장이지만 이 사건이 바로 선례가 되어야 한다"는 윤양 아버지의 한마디가 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