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정치기상도] 마지막 당부 .. 다시한번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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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시사평론가라는 직업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습니다.
특히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글을 쓰고 난 다음에 그렇습니다.예컨대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전자메일은 저를 매우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글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렇게 꼭 집어서 쓸 수 있을까 속이 시원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글을 보고 나는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책에서 한양대학교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이런 태도를 가리켜 "최대주의(maximalism)"라고 했습니다.백가지 쟁점이 있으면 백가지 모두 의견이 일치해야 진짜 "우리 편"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이죠.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흔아홉가지 쟁점에서 늘 견해의 일치를 보다가도 단 하나 중요한 문제에서 의견이 대립할 경우 상대방을 즉각 "나쁜 놈"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그런 만큼 최대주의가 판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사상과 이론이 경쟁하면서 공존하기 어렵습니다.저는 지난 아홉달동안 매주 정치칼럼을 쓰면서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최대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최대주의 신봉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마지막 칼럼에서 저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하나의 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를 비판하시는 것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지는 마십시오. 그 사람의 사상과 삶의 궤적 전체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삼가 주십시오. 세상은 완전히 희거나 검은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며 타고난 악당과 성인군자가 싸우는 무대도 아닙니다. 세상은 불완전한 인식능력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들이 숱한 고뇌와 번민 속에 서로 다투면서, 그리고 저마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바로잡아 가면서 살아가는 곳이라고 저는 믿습니다''이제 저는 역량의 한계를 느껴 이 칼럼의 연재를 스스로 접습니다.
욕설투성이 전자메일을 보내주신 열성적인 독자들까지 포함하여 한국경제신문의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언제나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독자들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볼 수도 있군" 하고 느끼셨다면, 그래서 또 하나의 "생각의 소재"로 받아들이셨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끝으로 저는 조금은 감상적이기 마련인 작별의 무대를 "악용"하여 여러분께 "개인적인 청탁" 한 가지를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주 "부적절한 술자리"와 "부도덕한 성추행" 사건으로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386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간부를 "최대주의적으로 단죄"하는 것을 재고해 주십사 하는 부탁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표방했던 정치개혁의 대의까지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는 없으며 시민운동과 환경운동단체가 지금껏 이루었고 앞으로 이루려는 모든 것을 다 불신의 늪에 빠뜨려 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명분을 가지고 좋은 목표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도덕적으로도 완벽하다면 좋겠으나 일부 그렇지 못한 점이 있다고 해서 그 명분과 목표 자체를 폐기처분한다면 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를 "개인적인 청탁"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지난 권위주의 시대에 우리 사회를 위해 바쳤던 땀과 눈물을 제가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키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반드시 보답하리라 믿습니다.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denkmal@hitel.net
특히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글을 쓰고 난 다음에 그렇습니다.예컨대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전자메일은 저를 매우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글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렇게 꼭 집어서 쓸 수 있을까 속이 시원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글을 보고 나는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책에서 한양대학교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이런 태도를 가리켜 "최대주의(maximalism)"라고 했습니다.백가지 쟁점이 있으면 백가지 모두 의견이 일치해야 진짜 "우리 편"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이죠.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흔아홉가지 쟁점에서 늘 견해의 일치를 보다가도 단 하나 중요한 문제에서 의견이 대립할 경우 상대방을 즉각 "나쁜 놈"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그런 만큼 최대주의가 판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사상과 이론이 경쟁하면서 공존하기 어렵습니다.저는 지난 아홉달동안 매주 정치칼럼을 쓰면서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최대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최대주의 신봉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마지막 칼럼에서 저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하나의 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를 비판하시는 것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지는 마십시오. 그 사람의 사상과 삶의 궤적 전체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삼가 주십시오. 세상은 완전히 희거나 검은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며 타고난 악당과 성인군자가 싸우는 무대도 아닙니다. 세상은 불완전한 인식능력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들이 숱한 고뇌와 번민 속에 서로 다투면서, 그리고 저마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바로잡아 가면서 살아가는 곳이라고 저는 믿습니다''이제 저는 역량의 한계를 느껴 이 칼럼의 연재를 스스로 접습니다.
욕설투성이 전자메일을 보내주신 열성적인 독자들까지 포함하여 한국경제신문의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언제나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독자들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볼 수도 있군" 하고 느끼셨다면, 그래서 또 하나의 "생각의 소재"로 받아들이셨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끝으로 저는 조금은 감상적이기 마련인 작별의 무대를 "악용"하여 여러분께 "개인적인 청탁" 한 가지를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주 "부적절한 술자리"와 "부도덕한 성추행" 사건으로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386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간부를 "최대주의적으로 단죄"하는 것을 재고해 주십사 하는 부탁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표방했던 정치개혁의 대의까지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는 없으며 시민운동과 환경운동단체가 지금껏 이루었고 앞으로 이루려는 모든 것을 다 불신의 늪에 빠뜨려 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명분을 가지고 좋은 목표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도덕적으로도 완벽하다면 좋겠으나 일부 그렇지 못한 점이 있다고 해서 그 명분과 목표 자체를 폐기처분한다면 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를 "개인적인 청탁"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지난 권위주의 시대에 우리 사회를 위해 바쳤던 땀과 눈물을 제가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키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반드시 보답하리라 믿습니다.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denkmal@hitel.net